<문화사랑>노벨문학상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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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해마다 10월의 세째주일 께면 외국문학전공교수의 집 전화벨이쉴새없이 울리는 밤이 있다.평소에 연구했던 작가가 노벨상을 타게되는 순간 그 교수는 그날 밤부터 며칠간 신문사와 방송국을 오가며 자기가 상 타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남의 일로 바빠진다.이러니 한번 타볼만한 상이겠군 느끼면서.
다른 어떤 부문보다 문학상이 유난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나라 문화의 긍지를 보여주는 척도인 때문일까? 그 상이뭐 그리 대수냐고 돌아서는 사람의 마음에도 분명히 신포도의 원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경제와 문화의 함수관계는 어느쪽이 먼저 변화의 동인으로작용하는지 설명하지는 않지만 둘 사이에 공통분모를 안고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술과 철학의 탈이념은 탈냉전시대로 이어지고 신 실용주의 철학은 이념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선 새로운 국제질서를 반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패턴 혹은 실험은 정치.경제보다 조금앞서 나타나는 시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노벨문학상은 이런 시대정신을 기법으로 그 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상황을 승화시켰을 때 주어지는 것같다.인간이 지녀야 할 변함없는 도덕성,작가가 속한 특수한 상황,여기에 한시대 세계문화의 흐름이 흡수될 때 작품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얻 는 것이다.
우리 문단의 특징중 하나는 작가의 생명이 짧다는 것이다.일찍출발해 문제작들을 쏟아놓고 정작 삶에 대한 깊은 체험과 성찰이묻어나는 40,50대에는 쇠퇴기를 맞는다.그래서 실험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되고 성숙한 실험작은 찾아보기 가 힘들다.
예술은 삶의 반영이고 체험의 깊이에 따라 성숙한다.평론가들은젊은층,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작가들은 자신의 독특함에다 보편성을 가미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제화.개방화시대라니 이제는 10월의 어느 날 밤 요란스런 전화벨이 외국문학 전공자의 집이 아니라 우리작가와 시인의 집에 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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