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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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3.실종 ○17 『「국과수」라니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라는 데가 있거든.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는 반드시 부검을 하도록 돼 있어.그러니까 국과수로 넘어가기 전에 오늘 밤 늦게나 새벽에라도 가보는 게 좋을거다 이거지.』 마형사가 설명해주었다.말투나 표정은 따듯하지 않았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을 듣고 있으면 괜찮은 사람 같기도 하였다.
『그 시체라는 거…어차피 써니는…아닐텐데요 뭐.』 『15살에서 20살 사이의 여자래.죽은 지는 48에서 72시간이 됐다구그러구…내가 지금 아는 건 그 정도가 전부야.니 말대로 선희라는 애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가보긴 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써니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면…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요?』 『양평에 있는 병원 영안실에 임시로 놔뒀다구 하던데…나한테 약도가 있어.』 아 나는 하여간 써니가 시체가 돼서 누워 있는 걸 생각하니까 아찔하였다.병원에서 본 얼굴의 반이 뭉개진 여자의 몰골이 떠올랐다.하지만 써니는 절대로 그럴 리가없었다.써니는 내게 나중에 싱글 침대를 사주겠다고 약속해달라고했었다. 곧 죽기로 마음 먹은 여자애가 나중에 싱글 침대를 사자는 말을 하지는 않을 거였다.
그런데 경찰들은 시체의 무얼보고 나이를 짐작한 것일까.영화 같은 데에서 보면 시체들은 다 발가벗겨서 보관하고 있던데… 나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이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희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써니엄만…어쩌면 제가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찾으면 어떻게 하죠.저하고 둘이서 양평의 병원으로 가보면 되나요?』 『넌 안 가봐도 돼.어차피 좋은 구경거리는 못될 테니까.오늘은 내가 비번이니까경찰서로 연락하면 돼.』 마형사는 나를 「날개」 근처에 내려주고 갔다.나는 날개에 악동들과 함께 모여 있던 써니 친구들 가운데에서 양아를 밖으로 불러냈다.그래서 써니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어디서 일하는지를 물었다.
『아주 급한 일이 생겼어.써니 엄마를 찾아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양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잘은 모르지만…이라면서도,양아는 그런대로 잘 알고 있었다.
『영동전화국 건너편에 「해븐스 도어」라는 데가 있대.뭐하는 덴지는 잘 모르지만…술도 팔고 그러는 덴가봐.』 나는 다시 날개로 들어가서 악동들의 돈을 모두 긁어모았다.마형사가 해준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는데,왜냐하면 나는 다른 아이들이 써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나는 나중에 다 이야기해주겠다고만 약속하고 날개를 빠져나왔다.
영동전화국 앞에서 택시를 내리니까 과연 길 건너편에 「해븐스도어」라는 간판이 보였다.천국의 문은 대리석으로 입구를 해 놓았는데 정말이지 으리으리하였다.내가 천국의 문에 막 들어서려는참이었다.나비넥타이를 맨 청년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안돼.여긴 너같은 꼬마들이 찾아올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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