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통역이 필요하신 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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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분당 외국어 자원봉사단 회원들이 10월 월례회를 위해 한자리에 모여 더욱 활발한 봉사활동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10일 오후 5시쯤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K-16 사무실.

백주영(41.여.학원 대표)씨가 공항에서 근무하는 미군 10여 명에게 통역 겸 한국말을 가르쳐주고 있다. 미군들은 한국 가정에 초대 받았을 때 음식 맛을 칭찬하는 방법을 그에게 물었다.

미군들은 백씨의 입 모양을 보며 "참 맛있어 보이네요. 집에서 손수 담그셨나 봐요"를 더듬거리며 따라 했다. 백씨는 한국의 김치 종류를 설명한 뒤 김치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소개했다.

승무원 경력 12년인 백씨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군들에게 무료로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성남시 수정구 태평3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전대판(74)씨가 성남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컴퓨터 강좌를 열었다. 물론 통역비와 수강료를 받지 않는 봉사활동이다.

한글 컴퓨터 사용 방법을 몰라 인터넷을 하지 못하는 일본인 20여 명이 전씨의 강의 내용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일본인 수강생이 많을 때는 일본어가 능통한 주부 홍성란(45).김연숙(46)씨도 가세한다. 이들은 모두 분당에 사는 외국어 자원봉사단이다. 성남시에 살거나 성남시를 찾는 외국인들은 통역 걱정이 없다. 외국어 자원봉사단이 낯선 한국 땅을 찾은 외국인들의 입과 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봉사단이 창단된 것은 2003년 7월. 당시 성남시 자원봉사센터가 분당 야탑코리아디자인센터 개관식을 앞두고 외국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게 계기가 됐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더 활발히 펼치자고 외국어 봉사단을 만들었지요."

정두경 회장은 "봉사단원들은 성남시를 찾은 외국인들이 통역을 찾으면 앞다퉈 뛰어나간다"고 말했다.

초대 회원은 10여 명이었으나 동참자가 늘어 지금은 127명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20대 대학생에서부터 8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영어를 비롯해 프랑스.중국.일본.베트남.카자흐스탄.몽골어 통역과 번역을 해 준다.

정 회장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 퇴임 후 영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평균 주 2회 4시간씩 봉사를 한다.

미국 앨라배마 공군대학에서 유학한 전직 공군 조종사 이재병(68)씨는 "국민 세금으로 외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노년에 봉사를 해서 갚는 게 도리"라며 영어 자원봉사에 열심이다.

유럽에서 10년간 살아 성남을 방문한 이탈리아인이나 프랑스인들을 전담으로 맡는 이종분(59.사회복지사)씨는 지역사회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 즐겁다고 한다.

이들은 그동안 성남에 있는 중소기업의 수출입 관련 문서 500여 건도 무료로 번역해 줬다. 너무 많은 기업이 도움을 요청해 영세업체에 한해 번역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일본어 통역을 담당하는 김옥진(74)씨는 "번역 비용을 많이 쓴 영세 기업들이 저희 덕에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할 때마다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10여 명의 회원은 성남시장으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표창을 받았다.

정 회장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게 민간외교라는 생각으로 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정영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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