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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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아버지가 방에서 나간 다음에,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쪽으로 갔다.책상 위에는,조금전까지도 형의 왼손에 달려 있던새끼손가락의 맨 마지막 마디가 댕그러니 놓여있었다.늘 보던 새끼손가락이었지만 손에서 떨어져나온 새끼손가락의 손톱 부분은 처음 보는 벌레처럼 아주 생소해 보였다.
『빨리 병원으로 가서 붙여보자 형.』 토막난 손가락을 잘 구경하려고 집어들었을 때 형의 시선과 마주쳤기 때문에 내가 그랬다. 『내가 잘랐는데…붙이긴 왜 붙여.』 그렇게 대답해주는 형이 오히려 고마웠다.그걸 붙여보겠다고 뛰어다니는 꼬라지도 아주웃길 거였다.
언젠가 사람의 목이나 팔이나 그런 것이 댕강 떨어지면 거기에있는 신경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혼자서 꿈틀거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건 말짱 거짓말이었다.형의 새끼손가락은 하얗게 미동도 없이 죽어있었다.그러니까 세상엔 실 제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할 말투성이일 거였다.
손톱 부분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고,칼에 잘린 곳에서 핏줄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다.다만 거기서 뿜어나온 피가 까맣게 엉겨붙어 있을 뿐이었다.…그런데 왜 나는 생물 성적이 나쁠까.
형은 멍한 표정을 하고 걸상에 앉아서 눈 깜박이는 걸 잊고 있었고,엄마는 형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이놈아…이못난 놈아….
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 끝났는데…우습게 울긴 왜 울어요.세상엔 별의별 병신이 많다구요.손가락 하나 없는 걸로는 병신 축에 끼지도 못한다니까요.』 나는 형의 그런 말들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다.진짜로 누가 누구를 위로한다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면서.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안방에까지 안고 가면서 나는 엄마의 엄마가된 것같은 느낌이었다.나는 사실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그런 거였다.나는 같이 아파할 뿐이었다.위로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안방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달수야,넌 형이 왜 저러는지 아니?』 『…글쎄요.』 나는 그러면서 안방문을 밖에서 닫았다.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버지의표정을 보고 얼마쯤은 통쾌했다.형이 아우를 앞지른 거야 당연하지. 형은 아파서 그러는 지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우리 둘이서만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보는 거 어때?』 내 말엔,할만큼 했잖아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형은 이마에 땀방울들이송송이 맺힌 얼굴을 가로저으며 투덜거렸다.
『피가 끝도 없이 나오는구나.씨팔…그래 어디 얼마나 나오나 보자구.』 『쪼맨 데를 꽉 쥐고 있어.』 『힘이 없는 걸.』 나는 한손으로 형의 팔목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상처난 손가락을졸라맨 손수건을 빼앗아 꼬옥 쥐어주었다.형이 신음소리를 내면서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만에 형이 말했다.
『자 불을 꺼.이젠 마음 편하게 잠이나 자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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