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야구도 컴퓨터 알아야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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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10월 미국 프로야구 내셔널 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필라델피아의 베테랑 스타디움에선 홈 팀 필리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숨막히는 일전이 펼쳐지고 있었다.브레이브스의 투수는 좌완 스티브 애버리.투아웃에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필리스의 좌타자 존 크룩이 타석에 들어섰다.순간 브레이브스 덕아웃으로부터지미 윌리엄스 코치의 사인이 중견수 닉슨을 통해 수비진에 전달되면서 관중석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내야진은 크룩이 당겨치는데맞춰 수비에 들어간 반면 우익수를 제외한 나머지 외야진은 모두좌측으로 수비 위치를 옮긴 것이다.우중간 한방이면 문제없는 2루타.드디어 크룩은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우익수 정면에 떨어졌다.스리 아웃 체인지.
우중간을 과감히 비워놓은 파격적인 수비 형태는 바로 크룩의 타구 방향을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브레이브스와필리스 두 팀은 포스트 시즌 시작 몇 주 전부터 상대팀 선수들의 타격 경향을 컴퓨터로 철저히 분석,플레이오프 내내 타자들이들어설 때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수비위치를 바꾸도록 하는 「컴퓨터 수비 플레이」를 선보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비 위치 결정은 대부분 포수가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포수나 투수의 경험 혹은 두뇌플레이에만의지하던 구시대의 수비 형태는 이제 발붙이기 어렵게 됐다.현대야구가 컴퓨터 데이터에 의한 철저한 수비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컴퓨터에 의한 플레이가 제대로 이 뤄지려면 자기팀투수들의 공 배합.속도,그리고 그 공에 대한 타자들의 타구 방향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 컴퓨터에 입력,분석해야 한다.분석된 자료들은 컬러로 도표화돼 상대선수들의 최근 경기 타격 분석자료들과 함께 회의 테이블에 오른다.
이것들을 토대로 선수들과 공개토론을 벌이게 되고 그자리에서 투수에 대한 공 주문과 수비 위치 결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IBM컴퓨터가 지휘하는 수비플레이.아직 메이저 리그의 몇몇 팀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제 프로야구도 컴퓨터가 지배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해주고 있다.
〈金廷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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