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국 근로자 고성장의 “희생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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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화벌이 급급 노동환경 뒷전/앞뒤 없는 개발로 환경파괴 위험수준/한상태 WHO 서태평양 사무처장 밝혀
한국·중국·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들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하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초래하고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의 한상태 서태평양지역담당 사무처장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 처장은 이 지역 노동자들이 외화벌이와 고도 경제성장 유지를 위해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됨으로써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 동부 연안지역의 소규모 공장들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지난해 상반기만해도 각종 안전사고로 1만1천6백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중국의 탄광 및 공장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화학·섬유공장 ▲싱가포르의 조선소 등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들로 최근 몇년동안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 처장은 밝혔다.
한편 한 처장은 이 지역의 국가들에서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장추구로 환경파괴 또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벤젠 등 발암물질이 수돗물에 유출됐던 한국이나 산업폐수로 오염되고 있는 홍콩 빅토리아만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산업화의 부작용들을 일으키는 주범은 고용자 50명 이하의 소형사업장들이라고 한 처장은 설명했다. 이들 소규모 공장은 근로환경을 개선하거나 폐수 등 산업폐기물들을 재처리할 능력이 없을뿐 아니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 국가들도 이제는 노동·환경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왕선하오(왕삼호) 중국 매탄공업부장은 최근 일련의 탄광사고로 1백55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자 『사고의 근본원인은 이익을 안전보다 중시하는 일부 관료들에게 있다』며 사고 재발방지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또 태국관료들은 얼마전 한 인형공장의 화재로 1백88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직후 「사업장의 안전대책 소홀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를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강력한 법규를 마련할 움직임이다. 한 처장도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가(NICS)들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할 노동조합들이 생겨나고 정부도 노동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등 사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사업주들은 강화되는 본국의 노동법·환경법을 피해 법망이 허술한 제3세계국가들로 공장을 이전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산업화 폐해의 「떠넘기기현상」이 우려된다고 한 처장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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