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 한국전쟁 의미 전하고 싶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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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명(文名)을 얻거나 돈벌이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국 전쟁의 의미를 증언해 주고 싶었습니다.”

최근 장편소설 『얼어붙은 장진호』를 펴낸 고정일(67·사진) 동서문화사 대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초등학생 시절 겪은 한국전쟁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한편으론 ‘꿈’을 갖게 해주었다고 했다. 서울에 살던 그의 가족은 1951년 피란 가던 중 경기도 수원 인근에서 중공군에 가로막혀 두 달 동안 포로 아닌 포로 생활을 했단다.

“머리 위로 총탄이 오가고 곁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전장을 겪으며 어린 마음이지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이 생겼죠.”
 환도 후 출판사 사환으로 들어간 것을 계기로 ‘종이밥’을 먹은 지 50여 년(그는 16세에 ‘정일출판사’를 차렸다고 했다), 내내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단다. 뒤늦게 성균관대 국문과를 다닌 것도, 2000년 봄 월간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한 것도 그런 숙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우리 연배에서도 전쟁을 나만큼 직접 체험한 이들이 많지 않아요.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 전쟁의 의미를 따져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고….”
 이를 위해 그는 함경도 개마고원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소설화하기로 했다.

“영하 40도의 칼바람 속에서 2만 5000여 명의 미 해병대가 중공군 12만 여명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려 벌이는 18일간의 생지옥전투지요. 세계전사에도 남을 정도니 상징성이 있다고 봤죠.”

 하지만 단편소설만 써온 그로서는 쉽지 않았다. 미국 장진호전투 참전전우회에서 낸 회상록 모음, 국방성 전사 등 100여 건의 문건을 두루 뒤져내느라 집필에 5년이 걸렸단다. 매일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가족들이 말릴 정도로 집필에 매달렸다. 그렇게 쓴 원고지 2000매 분량의 소설을 다시 1500매로 압축했다. 거기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없다. 전쟁 자체가 소재이자 주인공이다.

“거기서 싸웠던 모든 젊은이들이 역사의 희생자였으니 그런 형식이 될 수밖에 없죠.”
 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10권 분량의 소설을 구상한다는 그에게서 ‘영원한 현역’을 보았다.  

글=김성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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