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詩經과性 펴낸 한성대 원형갑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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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홀로 서 있는 팥배나무/길가 왼쪽에 자라 있네/저기 저 군자여/나를 찾아주시면 좋겠네/마음 속으로 좋아하시면서/어찌 먹지 아니하시나요….』(『詩經』중「홀로 선 팥배나무」).
孔子시대의 난해한 詩를 자유 性愛를 구가한 음란시로 볼 수는없을까.2천5백년전 孔子에 의해 엮어진『詩經』의 노래들은 원초적 생명력으로서의 성애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해석을 담은 책『詩經과 性』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윗시 구절중 「팥배나무」는 곧 여성의 性器란 색다른 풀이다.
『지금까지 유교적 틀에 갇혀 제 모습을 찾지 못했던 「詩經」의 진솔한 모습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저자 元亨甲씨(64.한성대총장)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온전한 고전인 『詩經』이마치 밀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 해석이 거부돼 왔다며 이제는 새로운 해석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했다.『詩經』은 孔子가69세때인 기원전 48 4년 그때까지 민중들 사이에서 즐겨 불려지던 노래들중 3백여편을 뽑아 엮은 시집.그러나『詩經』의 시가중 반 이상이 입에 담을 수 없을만큼 음란한 내용들이다.따라서 孔子를 섬기는 유학자들일수록『詩經』을 두려워하고 아예 외면해버렸다는게 元씨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종래 번역된「詩經」을 보면 한결같이 글자풀이에그치고 있습니다.에로스의 열기가 물씬 풍기는 성의 현장묘사를 입에 담기가 두려웠을 겁니다.하지만 이는 이성중심주의라는 안경을 쓰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는『詩經』의 노래들에는 힘찬 생명력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즉 자유롭게 표출되는 인간 생태인 性의 욕망을 용납하고 넉넉히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그는 현란하리만큼 원초적이고 노골적인 성애 표현에도 불구,시세계가 자연스럽 게 음미될 수 있는 것은『우수한 詩作솜씨와 더불어 힘찬 생명의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숲에는 떡갈나무 서있고/들에는 죽은 사슴 있네/흰 띠풀로간단히 묶어 싸니/그 여인 옥과 같으이/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내 손수건은 건드리지 마세요/삽살개를 짖게 하면 아니되어요.』(「들에서 죽은 고라니」중).
『詩經』의 밀회시들은 한결같이 표현 기법 자체가 소박.단순하면서도 어둡지 않고 발랄하다.감추거나 겉돌지 않고 밝으며 직설적이다.그는 이러한 노래들을 볼 때 주나라로부터 후기 춘추에 이르는 시대의 사회가 성개방을 현실적으로 보장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가 『詩經』의 음란 세계를 해석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포스트 모던 철학에 심취했던 80년대초.합리적이고 지적이라고 자만해오던 문명세계의 이성중심주의적 사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詩經』의 걸릴 것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생명의 세계에 동화돼 버렸단다.지난 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으로 등단한 그는『포스트 모던의 사상들』『시경과 성애 열락』등 다수의 저서를 갖고 있다.
〈李順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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