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후 대책 허둥대지 말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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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쌀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농민과 관련단체들이 거센 항의를 하고 있다. 농민입장에서 보면 정부의 개방불가가 하루만에 불가피로 바뀌는 전후사정을 설혹 이해한다고 해도 직접 피해를 보는 입장에서는 불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정부가 또한번 허둥대서는 쌀시장도 개방하고,우리 농업도 살리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 냉철하게 계획을 세워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부는 계속 농민들을 상대로 허신만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공식적으로 개방과 그 조건이 확정된 단계가 아니니 구체적인 내용을 공표하기는 이를는지 모른다. 그러나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어디로 우리 농업을 이끌고 갈 것이냐에 관한 정부의 대책과 방향이다. 성난 농민들의 마음을 임시방편으로 달래려고 벌써부터 농업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의 방향보다는 보상이야기가 튀어 나오고,농업목적세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에게 급한 것은 지금부터 농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인지,단계적으로 10년동안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할 판단자료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생산성이 높은 농가가 쌀을 80㎏ 생산하는데 4만5천원이 들지만 93년 현재 국제 쌀값은 중급기준으로 2만5천원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생산성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 것인지,질을 고급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해 지금쯤은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 있어야 한다.
농민들에게 보상을 해준다지만 쌀생산과 관련된 보조금을 주지 못한게 되어있어 소득보상형태로 휴경보상금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어디까지 경작규모를 늘려 기계농으로 육성하고,어떤 농지를 휴경시킬 것이며,농지상한선을 어떻게 늘리고,농업법인은 어떤 형태로 육성할는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계속 농촌에 남아 농업에 종사하려는 농민들에 대한 대책도 문제지만 할 수 없어서 도시로 유출되는 고령·여성 및 저학력으로 특정지워지는 인력에 대한 대책도 큰 문제다. 이 부분에 관한한 정부가 갖고 있는 신농정상의 계획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알아서 적응하라고 방치한다는 말인가. 농업인구의 자연감소를 기다리기에는 사태가 너무 급박하다.
쌀의 소비는 매년 감소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쌀생산 자체도 줄어들 수 밖에 없는게 대세다. 따라서 농업구조 개선의 방향도 쌀에 지나치게 소득원을 의존하는 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어느 규모로 정부가 예산으로 소득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기 십상이다. 가장 궁극적인 대책은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외소득을 포함해 자립할 수 있고,농촌을 떠나는 사람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대책이 마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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