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행 허신행 농림수산장관 기내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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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쌀 지키기」 온힘 쏟을 생각”/협상안 미리 밝히면 오히려 손해/한국 혼자 남으면 더 유리할수도
『어떻게 해서든지 뿌리뽑지 않으면 귀국하지 않을 작정이다.』
쌀시장 고수라는 특명을 띠고 미국·유럽공동체(EC) 등과 힘겨운 싸움을 하기 위해 5개 부서 실무 차관보로 구성된 고위 협상대표단을 이끌고 브뤼셀행 비행기에 오른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단장)의 각오는 대단했다. 쌀시장을 수호하려는 한국정부의 마지막 특사라는 점 때문에 잠을 못자는 허 장관을 3일 새벽(한국시간) 기내에서 단독으로 만나 정부의 입장·협상전략 등을 자세히 들었다.
­고위급 협상단을 파견하게 된 배경은.
▲모든 수단을 동원,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표현으로 봐달라.
­미·EC와의 협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세계무역질서의 확립과 교역증대를 위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고,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는 협상타결을 위해 원칙적으로 협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쌀처럼 각국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돼 어떤 나라도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쌀문제만 다루게 되는가,아니면 금융도 포함되는가.
▲기본적으로 쌀문제만 다루게 되지만 쌀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분야의 양보까지 각오하고 있다.
­협상전략은.
▲우리가 카드를 먼저내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서 쌀을 지켜주는 방안을 얘기하자고 하면 토의할 것이다. 그래도 안될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협상전략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본국훈령을 받아가며 협상에 임할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국가들의 협상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특히 미국과는 협의를 여러번 한다는 방침아래 자꾸 물고 늘어지는 작전을 쓰려고 한다.
­「쌀시장 개방불가」라는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없는가.
▲그렇다. 정부는 이의 관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만 고립될 것이 뻔한데도 이 원칙을 고수한다는 얘긴가.
▲협상이란 여유있을 때 잘되지 않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벼랑에서 타결되는 사례가 많다. 고립됐다고 막판 협상을 해보기 전에 미리 백기를 들고 개방을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만 남을 때 오히려 우리의 특수한 입장반영이 용이해질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과 캐나다는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캐나다의 유제품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했는데 UR에서 이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예외를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 관철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권을 위임받고 가는지.
▲최선의 협상결과는 풍부한 정보와 아이디어,그리고 충분한 협의위에서 가능하다. 「전권」이란 말보다 「협의」란 용어가 더 적절하나 협상책임은 나 혼자 지겠다.
­미국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 미국은 우리와 달리 대통령의 지시가 전부가 아니라 각종 이해단체들을 설득해야 하고 여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미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설득여부는 협상상대의 자세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혼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점에서는 미국이나 EC,모든 협상국들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선 고위협상단 파견이 「쌀시장 부분개방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가 최선을 다했음을 국민에게 보여주자는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쌀문제를 어떻게 소홀히 취급할 수 있겠는가. 「의심」보다 「성원」이 필요한 때다.
­물밑협상에서 제시할 대안이 이미 마련돼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사실무근이다.<브뤼셀=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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