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전략과 중심축은 있는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번 쌀사태를 보며 걱정스러운 것은 과연 정부가 쌀문제에 대한 기본전략과 이를 담당할 중심축이 과연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부가 치밀하게 준비된 쌀전략과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면 요즘 다소 혼란스럽고 시끄럽게 보이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정부가 별 복안도 없이 여론이나 인기의 향방만 살피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과거엔 그런 일이 너무 많았다. 6공초 여론과 인기 때문에 농어촌 부채탕감을 대대적으로 했는데 만약 그때 그 돈으로 농촌구조조정작업을 시작했더라면 쌀개방이 이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쌀개방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대증적 처방보다 우리나라 농업,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긴 장래를 생각하는 근본적인 것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쌀에 대한 확고한 전략을 갖고 팀플레이로 일을 풀어나가야 한다. 당장의 비난이나 인기가 겁나 우물쭈물하거나 책임도 못질 흰소리나 제스처나 하고 있으면 역사의 죄인이 되기 쉽다. 이젠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능동적으로 일을 할 때가 됐다.
우선 김영삼대통령은 국론과 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쌀개방을 절대 할 수 없다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솔직히 밝히고 국민들의 각오를 다져놓아야 한다. 쌀개방이 불가피하다면 그 경위와 사정,또 개방을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을 털어놓고 국회와 국민들을 설득에 나서야 한다. 우선은 고통스럽지만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면 국론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라의 각 조직이 쌀개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무섭게 챙겨할 것이다.
그 다음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정부 부처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전행정부가 팀웍으로 쌀문제에 달려들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필요하면 인기없는 깃발을 들 각오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허신행 농림수산부장관이 직책상 고군분투하고 있고,다른 사람들은 흙탕물 튈까봐 애써 몸을 사리는 모습이라면 지나친 표현인가.
경제 팀장인 부총리는 좀더 적극적인 농림수산부장관을 거들고 개방후의 장기전망과 구체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재정·금융·농지형질변경 등 모든 가용재원을 총동원하여 개방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쌀생산성을 국제수준으로 접근시키는 시나리오와 방안을 가지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다음 민자당 대표나 간부들도 상응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물론 야당도 한쪽은 비판자이지만 수권준비정당으로서의 정책대안을 당당히 내놓아야 한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남의 길 같이 초연하게 구경·논평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쩔 셈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