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안 양보대신 경제실리추구/미측에서 본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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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제조건 명시하며 “단계 타결과 다르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23일 대북한 핵문제 해결방안을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으로 새로이 규정하고 북한이 핵사찰과 남북한 대화재개를 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명시했다.
이는 미국정부가 최근 포괄적 타결안 도입을 내비치면서 새로운 접근방식이 나올 것이라고 밝힌 것에 비하면 김영삼대통령이 주장한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여부의 한국정부 결정 우선권 인정 ▲단계적 해결방안을 수용,미국정부가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 백악관 고위관리는 이날 한­미 정상회담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 새로운 접근방식은 북한에 대한 선 사찰수용을 강조하고 북한이 대응하는 방향에 따라 미국 역시 상반된 두가지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양국 정부는 현재 이 새로운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한국정부와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미 백악관의 이같은 설명은 철저하고 광범위한 방식이 원칙에서 양국 정상에 의해 합의됐으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김 대통령의 기존원칙 고수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에 대해 새로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미국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타결안이나 새로운 접근방식 등 북한에 대해 신축성있는 정책을 도입하려던 시도가 한국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대북한 협상에 삽입할 세부사항을 마련하고 있다」고 단서를 붙여 금주내 있을 유엔에서의 대북한 접촉에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는 여유를 준비해놓고 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측의 상당한 미흡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관리는 브리핑에서 시종일관 시니컬한 표현을 중간중간에 삽입하면서 정상회담 성명에 이해하기 어려운 『혼란스런 점이 있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은 단계적 타결안과는 다르다.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북한에 대해 이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렇게 할 것이고,저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저렇게 할 것이라고 쏘아붙이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이는 북한이 한국정부의 어깨넘어로 미국과 직접 협상하려는데 대해 한국정부가 강력히 제기한 불만을 일단 수용하면서도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측의 신축적인 방식이 남북간의 체면싸움으로 지연되는데 대한 미국정부내의 불쾌감을 전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정부에 대해 양보만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백악관 관리는 브리핑 서두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양국 정상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클린턴 대통령이 한국정부의 금융서비스 개방,농산물관세화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우루과이라운드의 12월15일 이전 타결에 대해 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냈다』고 서두에서 강조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정부가 북한 핵문제에 관해 한국정부에 수사적 양보를 한 대신 경제적 실리를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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