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 27년만에 재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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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은 영화제작자이자 극장업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진우감독의 66년 작품인『초우』가 27년만에 재개봉된다.
신성일.문희가 주연을 맡은 이 흑백영화는 9월초 코아아트홀.
시네하우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프랑스대사 집 가정부 영희(문희)가 주인집 딸이 준 프랑스제레인 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선다.우연히 들른 음악감상실에서 영희는 자동차 정비공 철수(신성일)을 만나게된다.출세욕에 불타는철수는 자신을 영화사 사장 아들이라 속이고 영 희 또한 엉겁결에 프랑스대사의 딸 행세를 하게된다.
그로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데이트하기로 약속한 두 사람.계층상승을 꿈꾸는 두 사람의 사랑은 그러나 결국 비련으로 끝나고 만다. 이 영화는 군데군데 튀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 정진우감독의 패기가 넘치는 연출이 볼만하다.변칙적인 카메라 앵글의 구사,대담한 편집등 60년대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영향을 엿보게 한다.이는 한국 영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오락상품」 이던 60년대 특유의 자신만만함의 반영이라 볼 수도 있을 법하다.
이 영화는 또 60년대 한국사회의 문화사적 풍경을 잘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부잣집에서도 삼표연탄을 때고 전당포에서안경이나 영어사전도 잡아주던 이 시대엔 클래식 작곡가 이름을 알아야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문화적 허 영의 시대이기도 했다.지금 보면 지극히 신파조로 보이는 대사들도 나름대로는빈곤속에서 물질적 욕망의 꿈을 꾸던 60년대 대중들의 심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그런 점에서도 이 영화는 지금의 한국 영화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케 하는 그런 점에서도계기가 된다.
〈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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