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퇴조〃고민하는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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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이 경제적으로 강대국 위치를 위협받고 있는 한편 문화수준마저 30년 전보다 떨어졌다는 보고서가 발표돼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의 정책연구단체인 헤리티지 재단과 엠파우어 아메리카는 최근 지난 60년부터 90년까지의 인구 증가율·국내 총생산(GDP)·이혼율·범죄 증가율·10대 자살율 등을 바탕으로 문화선행지수(ILCI)를 발표, 이 기간에 미국의 전반적인 문화수준이 퇴보를 거듭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사회가 이 보고서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그동안 정부가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 문화 수준이 계속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60년 이후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40%에 그친 반면 GDP는 3배 증가했으며 정부의 사회지출도 실질증가가 5배 이상 기록했다. 복지지출은 이 기간에 6배 이상, 교육비 지출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처럼 미국정부가 국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는 긍정적인 가치관의 상실로 나타났다. 30년 사이 강력 범죄 6배, 사생아 출산 4배, 이혼율 4배, 100대 자살율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대학수학능력검사(SAT)성적도 60년에 비해 평균 80점이나 낮아졌다.
미국 쇠퇴론이 심심찮게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발표된 이 연구보고서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 쇠퇴를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곧바로 정계·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은 미국국민들, 특히 젊은이들간에 가치기준을 자제력에 두지 않고 자기 표현에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 미국의 문화 퇴락이 국민의 태도와 신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들에서도 예전에 비해 희생이나 사회적 존경·정의·자제력을 가볍게 여기고 육체적 즐거움이나 성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윌리엄 베니트 전 교육장관은 이에 대해 미국과 같은 자유사회에서는 문화수준 하락에 대한 책임도 최종적으로 개인이 져야 한다면서「미국문화부흥」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는 정부에 대해 복지프로그램에 돈만 쏟아 부으면 된다는 인식을 버리도록 충고했다. 복지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일부 국민들이 나태해지도록 부추기는 역효과도 무시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베니트 전 장관은 그대신 정치 지도자들이 공개강연이나 윤리적으로 고차원적인 사회법안 등을 통해 가치관회복의 분위기 조성에 중점을 두도록 당부했다. <정명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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