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이방인이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호 13면

‘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며칠 동안 이 물음이 나를 따라다녔다. 아마도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 난 후유증인 듯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토박이’란 단어가 들릴 때마다 가슴 언저리에 통증이 전해져 왔다. ‘왜 아플까? 왜 이렇게 아프지? 왜 아프지? 응, 왜 아픈 거야?’

소설가 이명랑의 시네마 노트 : 마틴 스코세이지의 ‘갱스 오브 뉴욕’

‘갱스 오브 뉴욕’이란 영화를 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라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동네 곳곳을 싸돌아다녔다. 옛날에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영등포 로터리며, 여중생이나 여고생의 발길을 끌던 떡볶이촌이 있던 자리며, 문구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랬다. 예전의 그 골목길들, 그 골목길들에 있던 가게나 건물은 사라지거나 변했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20년 전에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토박이가 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토박이들의 것이다. 그렇다면 토박이란 또 누구인가? 토박이란 원래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다. 원래부터? ‘갱스 오브 뉴욕’이란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19세기 후반의 뉴욕에 대한 이야기다. ‘빌’이라 불리는 사내가 이끄는 토박이 세력과 ‘죽은 토끼’라 불리는 이주민들 간에 목숨을 건 싸움이 있었고, 그 뒤로 싸움에서 이긴 토박이 세력이 뉴욕의 뒷골목을 장악한다. 빌은 말한다. 미국은 누구의 것인가? 토박이들의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주민 따위, 빌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토박이라 지칭하는 빌 역시 어찌 보면 이주민이다. 미국인 중에 이주민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들은 모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 아닌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에 통증이 전해져 왔던 까닭은, 나 역시 이주민의 후손으로 이곳에 와서 이제는 토박이가 된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 등등, 시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북쪽에서 넘어와 자리를 잡은 상인들이 많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떠돌다 타향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그들은 어떤 싸움을 치러냈을까. 그런 싸움을 치러낸 사람이 단지 실향민들뿐일까.

뿌리내린다는 것, 동네에서든 직장에서든, 하여간 어디에서든 밥벌이를 해서 먹고살 수 있기 위해 한곳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일단 뿌리를 내리게 되면, 처음에 힘들었던 기억은 까맣게 잊고 어느새 토박이가 되어버린다. 이미 토박이가 되어버렸더라도 가끔은, 정말이지 아주 가끔은 처음 이곳에 와서 힘들게 생활했던 옛일을 떠올려 봤으면 싶다. 그래야 이제 막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이주민들의 쓰라린 현실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금을 뿌리는 일만큼은 하지 않을 게 아닌가.   

_____
이명랑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건너가 명랑한 소설집 『삼오식당』 『슈거 푸시』 등을 발표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