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g 반지 … 48.8㎡ 에어컨 … 손님도 주인도 "헷갈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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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 반지에는 백금이 7g 들어가 있습니다."

"예? 얼마 들었다고요?"

"아, 두 돈에 약간 못 미친다는 말입니다."

'근' '돈' '평' 같은 비(非)법정계량단위 사용을 금지한 첫날인 1일 서울 종로구에 밀집해 있는 귀금속 상가에는 작은 혼란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평소 귀금속 계량단위로 써오던 '돈' 대신 '그램' 단위만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마다 금속함유량을 적어놓지는 않아 표지판을 바꿀 필요는 없었지만, 업소마다 선뜻 이해를 못하는 손님들에게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종로4가의 한 금은방 종업원 송모(37.여)씨는 "상담할 때도 '돈' 단위를 쓰지 말라는 계도공문이 내려와 가능하면 지키려 한다"며 "손님이 몇 돈이냐고 묻는데 우리도 쉽게 답이 안 나와 계산기를 두드리곤 한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에서는 예전 계량단위를 바꾼 업소를 찾기 어려웠다.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아현시장에서는 '방울토마토 한 근 1000원' '밤 한 되 5000원'과 같은 안내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마늘과 생강을 팔고 있는 김성자(63.여)씨는 "손님들도 한 근, 두 근을 찾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의류 매장에서는 재고 문제로 난감한 표정이었다. 서울 명동의 한 캐주얼 의류 매장 관계자는 허리 크기를 인치 단위로 표기한 청바지 재고를 보여주며 "본사에서 아무런 연락도 없는데 매장에서 이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기성복 매장의 경우 이미 대부분 제품이 센티미터 단위로 표기돼 있어 큰 혼란은 없었다.

평 단위로 쓴 매매.임대 건물 안내판을 내걸고 영업을 해왔던 부동산 중개업소들도 이를 교체하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 인터넷의 부동산 포털들은 여전히 '평형' 표기가 많았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강 공인중개사 임명식(39) 소장은 "제곱미터로 고쳐놓으면 손님들이 매번 되물을 것 같아 환산표를 붙여볼 생각인데 이것도 법 위반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외국에서는 피트나 야드를 그대로 쓰는데 왜 우리만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에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촌 그랜드마트의 전자매장에선 평형 단위를 쓰던 에어컨은 제곱미터 단위로 바꿨지만, 텔레비전에는 여전히 인치로 표기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가전매장 판매원 정모(43.여)씨는 "스티커는 바꿔 달겠지만 앞으로 3~4개월 정도는 손님들에게 옛날 방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시행된 '법정계량단위 정착 방안'에 따라 '평'과 '돈' 단위를 중심으로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상대로 1개월간 단속과 홍보계도를 병행한 뒤 재래시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근' '관' 등 기타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다.

권근영.권호 기자

◆법정 계량단위 정착 방안=1일부터 모든 도량형을 m, g 등 국제 표준 단위로 통일하는 방안. 무게를 나타내는 돈.근은 g, ㎏으로, 넓이를 표시하는 평.마지기는 ㎠, ㎡로, 길이를 나타내는 인치.자.마일.피트는 ㎝, m, ㎞로, 부피를 표시하는 홉.되.말.섬은 ㎤,㎥, L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 법정 계량 단위를 쓰지 않으면 1, 2차 경고를 거쳐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골프장의 야드와 볼링장의 파운드는 국제적 관례로 사용되는 만큼 m, ㎏과 병행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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