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페라가모 구두 100년 역사 한국 언론에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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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내에 있는 페라가모 본사 사옥. 중세식 건물을 사들여 사옥으로 쓰고 있다. 사옥 안에는 페라가모 박물관도 있다.

말발굽을 닮은 간치니 로고가 달린 구두는 한때 멋쟁이의 상징이었다. 바로 이탈리아 피렌체가 고향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구두다. 100여 년 전 이탈리아 외딴 시골 마을 보니토에서 태어난 구두 장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빚어냈다. 페라가모는 ‘인간의 발에 가장 잘 맞는 편안한 수제화’를 만들어 유명세를 탔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예술적 디자인’으로 평가받으며 메릴린 먼로 등 20세기 초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올해는 페라가모가 처음 구두를 만들기 시작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페라가모는 9살 때 처음 여동생들을 위해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수제화의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페라가모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국내 일간지 처음으로 피렌체의 남성용 구두공방을 다녀왔다.

피렌체=강승민 기자

 피렌체 시내에서 30여 분 떨어진 작은 마을 알바트로스. 22일(현지시간) 오전 일찍부터 100여 평 남짓한 페라가모의 공방은 장인들의 땀냄새로 가득했다. 남성화 최고급 라인인 트라메자(핸드 메이드) 작업장 명장(名匠)인 안토니오 푸치오니는 “1948년 살바토레가 썼던 기계를 아직도 사용할 만큼 전통 방식 그대로 구두를 만드는 곳”이라며 제작과정을 일일이 재현했다.

 “토마이아(구두 윗부분)는 안감과 겉감, 두 겹의 가죽으로 만듭니다. 연한 가죽으론 모양이 잡히지 않아 이런 것도 사용하죠.”
 푸치오니는 마분지 모양의 고정물을 꺼내 들고 능숙하게 풀을 발랐다. “발등 부분에 이 고정물을 넣을 땐 딱 달라붙지 않도록 해야 해요. 살짝 붙여야 발을 편하게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가 종이접기를 하듯 척척 풀을 바르며 토마이아의 형태를 잡았다. “풀도 천연재료만 씁니다. 생선 뼈로 만든 부레풀이란 거죠. 이래야 구두에 공기도 더 잘 통합니다.”
 그는 이어 분무기로 토마이아에 물을 뿌렸다. 또 그것을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찜통에 넣었다. “가죽이 부드러워야 하거든요. 그래야 발도 편하고.”
 그는 설명할 때마다 ‘편안한 발’과 ‘손으로 직접’ ‘천연’ 등을 거듭 강조했다. “페라가모가 만들어 쓰던 기계들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지만 일부 현대화된 기계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여전히 전통 그대로고, 모두 장인들의 손에서 빚어집니다.”

 예컨대 토마이아 가죽을 알맞은 형태로 잡아 늘이는 것은 장인의 몫이다. 장인의 눈과 손이 생명이다. 하지만 작업 중인 구두를 고정시켜 주는 것은 프레스 머신이다.
 푸치오니는 “이렇게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다 보니 페라가모 구두 중 똑같은 것은 단 한 켤레도 없다”고 자랑했다. 같은 디자인에 같은 크기 구두라도 판박이 제품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페라가모 수제화는 당연히 비싼 편이다. 국내에서도 최소 90만원대다. 특별주문할 경우 150만원을 넘는다. 같은 페라가모 브랜드라도 일반 구두는 40만∼60만원가량이다. 푸치오니는 이처럼 부담스러운 가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페라가모 이전에는 귀족들이나 수제화를 신을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나 한 땀 한 땀 재봉한 구두를 구할 수 있습니다. 페라가모는 또 구두에 해부학 지식을 접목한 사람입니다. ” 대답은 명쾌하지 않았지만 장인의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설명을 듣다 보니 궁금증이 커졌다. 구두에 해부학적인 지식? “페라가모가 미국에 처음 건너가서 의문이 생겼답니다. ‘모든 사람이 불평하지 않는, 그런 편한 신발은 어떻게 만들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야간에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해부학 수업을 들으며 발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우리 장인들에게 전수된 거죠.”

 어느덧 토마이아 모양새가 완성됐다. 그리고 몇 겹의 가죽이 밑창에 덧대어졌다. 밑창 바닥을 자세히 보니 손가락 너비의 길쭉한 쇳조각이 눈에 띄었다. 페라가모의 발명품이다. 웬만한 성인 남자가 힘껏 구부려도 끄떡없을 만큼 견고하다. 신발을 신은 사람의 무게가 쏠리는 발바닥 장심(발바닥에서 아치 형태로 움푹 들어간 부위. 걸을 때 땅에 닿지 않는다)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밑창 작업에도 마지막 멋내기 비법이 있었다. 밑바닥의 0.5㎜ 정도가 약간 튀어나오게 다시 한번 밑창 테두리를 깎아냈다. ‘람브리스’라고 불리는 공정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절삭기에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물을 뿌려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람브리스는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지만 페라가모의 ‘특별함’에 방점을 찍는 것처럼 보였다.
 페라가모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보통 1주일이 넘게 걸린다. 밑창에 굽을 굽히고 색을 칠한 뒤 네댓 번씩 정성스레 윤을 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살바토레 페라가모(1898∼1960)=이탈리아의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9세에 손수 구두를 만들었고 10대 시절 할리우드로 건너가 대성공을 거뒀다. 바닥에 쇳조각을 박아 몸의 하중을 분산시키는 특수공법은 대학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한 페라가모만의 기술이다. 유족들이 사업 영역을 의류와 가방 등으로 넓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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