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이념」 아·태질서 공동대처/옐친 방중 무얼 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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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군비절감 위해 국경분쟁해결 타진/심천방문 중국식 개발모델도 「학습」
17일 시작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양국간 최대현안인 국경분쟁 해소방안을 논의하고 중국식 경제개발 모델을 「학습」하는 한편 핵무기 제조기술 등 대중국 첨단기술 이전문제의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이 지난 89년 중국을 방문,30년간의 중소이념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후 3년6개월만에 성사된 이번 옐친대통령의 방중은 또 일본의 군사대국화,미국의 대중국 압력강화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역학관계가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국제적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각각 60만(러시아)·1백만(중국) 대군을 4천㎞에 달하는 국경지역에 포진시켜 놓고 있는 양국은 이미 옐친대통령의 이번 방중기간중 국경배치군 대폭 감축에 합의하기로 약속한바 있다. 이는 양국간 긴장을 완화하고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경무역을 돕는다는 표면상의 이유도 있지만 막대한 군사비를 경제개발에 투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협조는 독립국가로의 통합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국 서부지역과 구소련권 중앙아시아의 회교계 소수민족들에 대한 경고의 뜻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옐친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정치민주화에 우선시킴으로써 구소련과는 달리 비교적 체제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현대화모델을 배우겠다는 자세다. 방중 마지막날인 19일 중국 경제개혁의 상징인 심천경제특구를 둘러 볼 수 있도록 요청한데서도 이같은 그의 의지가 확인되고 있으며,그것은 러시아가 추진중인 연해주 경제자유지역 등의 건설에 원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소련해체를 틈타 일본이 자위대를 증강하는 등 이 지역의 새로운 군사강국으로 등장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공연히 인권외교를 내세우며 중국에 압력을 가해오고 있는 것과 관련,양국 모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점 또한 양국의 협조를 강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들어 미국 등 서방측의 우려에도 불구,수호이27기 등 첨단전투기는 물론 핵무기 제조기술까지 러시아로부터 대량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경제회복을 위한 외화가득수단으로 무기수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어 이번에 양국간 무기거래에 관한 모종의 합의가 이뤄지리라는 것이 중평이다.
따라서 옐친대통령의 방중은 양국간의 「복원된」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앞으로의 협력방안을 강구한다는 표면상의 의미보다는 탈이념시대를 맞아 질적 변화를 보이고 있는 이 지역의 질서재편에 공동대처하고,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겅제개발모델을 배우고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현대화된 첨단무기를 수입하는 「내부거래」를 마무리짓는데 진정한 목표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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