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출판기념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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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낙엽이 한닢 두잎 떨어지는 경복궁후정의 구민속박물관건물 오른쪽에는 찾는 사람의 발길도 없이 홀로 외로이 서있는 비가 하나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달필로 쓰여진 비명은 「명성황후 조란지지」. 1895년 을미사변때 황후의 몸으로 이른 새벽 침실에서 끌려나와 일인양인들에 의해 무참히 참살된후 시신이 불태워진 곳이다. 8일은 명성황후 민비가 「옥호루의 한」을 품은채 눈을 감은지 97주년이 되는 기일. 이날 이 비석 앞에는 이색적인 기념행사가 하나 벌어진다. 최근 최문형교수(한양대) 등 국내 역사학자 6명이 공동집필한 논문집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출판기념회가 바로 그것이다. 한 주권국가의 황후를 그 나라에 주재하는 외교관이 그토록 참혹하게 살해한 것은 세계역사에서 극히 드문 일이다. 그래서 양식있는 일인들조차 「역사상 고금 미증유의 흉악한 사건」이라고 일컫는 이 시해사건이 그동안 역사의 뒤안길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은 여러가지 이유때문이다. 우선 일본측은 이 사건을 당시 주한공사였던 미우라(삼포오루)개인이 저지른 범행으로 일본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발뺌하는데 급급,사건을 조작하고 자료를 은폐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따라서 시해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1차자료가 거의 일실되다시피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거기에다 일본의 연구자들도 그들이 저지른 「야만적 살인행위」의 진상규명을 기피하는 경향마저 있어 시해사건은 점점 미궁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는 시해사건 3개월전 미우라공사가 전임자였던 이노우에와 내무대신 노무라 사이에 오갔던 비밀전문 등 일본 국회도서관의 극비자료와 사건후 주한 외교사절들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 등 방대한 자료를 입수,관계학자들이 공동분석함으로써 명성황후시해는 일제수뇌부의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집행되었음을 밝히고 있어 앞으로 이 연구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
어쨌든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그 후의 정신대문제와 함께 일본이 저지른 인륜을 저버린 범죄중 가장 흉악한 범죄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 두 사건의 진상은 꼭 밝혀져야 한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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