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속의 「비민주」경계 |―우리국민 정서에 맞는 제도적 뒷받침 필수 |김용신 <동양문화연구소장·정치철학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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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국병」이란 말이 요즈음 세간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러한 「한국병」이란 그 실체가 무엇인가. 말할것도 없이 그것은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통틀어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그 문제점들이란 무엇인가. 이담을 위해서는 우선 우리사회가 내세우고 있는 목표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제점이란 어떤 목표나 가치에 어긋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목표가 민주사회건설이라면 그것에 배치되는 각종 현상이 한국병일 것임이 틀림없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목표를 다시한번 분명히 하고 그 목표에 못따라 가는 근본원인을 따져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재발을 금하는 완치 처방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병 사회병리 통칭>
먼저 우리가 원하는 목표가 자유민주주의라면 그것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말할것도 없이 자유와 평등을 위해 각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각 분야에서의 능력발휘가 사회적 가치로 인정되며, 폭력보다는 대화로, 다수에 의하여 정해진 바를 지키고, 선거를 통해 우리의 앞을 반영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대통령출마를 「대권도전」이라고 표기하는 왕조사적 사고가 존재한다. 각 분야에서의 능력발휘를 강조하면서도 돈 좀 벌고 명성 좀 얻으면 누구나 정치판으로만 뛰어든다. 그뿐이랴! 맘에 안들면 폭력부터 휘두른다.
또 우리들이 뽑아놓고 다음날부터 비판한다. 다음에 안찍으면 될 일을 찍어놓고 하소연이다. 한마디로 민주의 핵심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그 핵심을 알아도 우리 몸이 말을 안듣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내부에 흐르는 정서, 구체적으로 무의식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도 의식치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갖가지 욕망들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심적양상이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속에 흡입되어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무의식은 서구의, 민주가치와 잘 부합되지 않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과거문화에 민주적 요소가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우리문화가 부정적으로 악용되어져 왔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소위 예의가 권위로, 권위가 억압의 도구로, 자원의 결핍이 양보보다는 사욕의 확대로, 작은 나라가 겪어야했던 생존의 노력이 사대정신으로 악용되면서 우리 모두 살아남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니 성공해서 부모님 즐겁게 해드리고 가문을 빛낸다는 전통의 미덕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벌고 권력쫓는 비정상으로 변해버렸다.
이와같은 우리무의식의 병리적 현상 아래서는 아무리 민주주의 외쳐도 될리가 만무하다.

<민주가치의 이해 필요>
따라서 제일먼저 강구돼야할 처방은 민주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통해 그것에 배치되는 우리의 무의식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들 스스로그것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병의 완치를 위해서는 꼭 한번 구체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작업이다.
또한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무의식을 무조건 반민주적이라 하여 살벌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어떤 목적으로 가는 길에 유일성이 존재치 않는다면 우리의 목표를 민주에 두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무의식이 따라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노력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성공한 제도가 우리사회에서도 성공할수 있다는 발상은 문화의 특성에 따른 국민정서의 차이를 모르는 처사인 것이다.

<우리문화·이념 가꿀때>
이러한 양면작전, 즉 우리의 목표에 어긋나는 무의식을 지적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노력,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이 따를 수 있는 제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들만의 특유한 문화와 이념을 가꾸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병」을 완치시키는 길이며 남의 것에만 의지하지 않고도 세계속에서 공존할수 있는 우리나름의 건강을 가꾸어 가는 길인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문제에 대한 수많은 처방이 있어 왔지만 그 사회가 내건 목표와 국민무의식과의 연관성을 살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인간행동이 의식보다 무의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무의식의 이해없이 한 사회의 병리현상을 처방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무의식의 이해를 골간으로 하는 「한국병」의 정신분석적 처방을 제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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