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띤 경쟁 없이 맥빠진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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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6년만에 서울에서 치러진 제3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는 러시아 등 구 공산권의 참여로 규모가 커진데도 불구하고 종래 이 영화제가 지녔던 친선과 관광, 그리고 리셉션의 영화제라는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영화제란 우선 참가작품의 수준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영화의 경쟁 장이라는 주목적과 영화의 견본시장을 통한 영화교역의 확대, 그리고 영화인간의 정보교류를 통한 영화의 발전이 부 목적을 가지고 열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제의 목적을 영화인과 팬들이 어울려「즐길 때」대중문화의 축제의 장이 된다.
그런데 이번 아-태영화제는 90년 이후 바뀐 경쟁영화제의 면모를 완전히 정착시켜 그 전기를 찾는다고 했으나 경쟁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볼 수 없었고 견본시장의 경우는 호주가 그런대로 팸플릿 등을 설치, 성의을 보인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했었다.
참가한 영화인들도 관광과 리셉션으로 소일하는 모습이었으며 특히 국내영화인들은 냉담할 정도로 영화제에 무관심했다.
영화인들의 무관심은 국내영화계의 고질적인 분파싸움과 단결심의 부족에서 기인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 영화제가 작품, 곧 영화를 위한 영화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제작자를 위주로 친선도모행사로 일관하기 때문에 감독·연기자·영화기술진 등이 시큰둥해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영화제가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되기에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관계자들은 앞으로 아-태 영화제가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세계적인 우수작 초청감상회, 견본시의 활성화, 그리고 경쟁분위기의 긴장감 조성 등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한다. 결국 이번 영화제는 일본이 자국영화의 한국 상륙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인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예의 아-태 영화제가 되어 버렸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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