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때는 늦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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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8강전 하이라이트>

○ . 조한승 9단 ● . 한상훈 초단

장면도(121~129)=우상에 침입한 백은 처음엔 소수였으나 어느덧 대군으로 늘어났다. 기회를 봐서 버릴 수 있는 돌이 아니고 반드시 살려야 하는 돌이 됐다.

백△로 붙여 활로를 열 때 121은 준비된 강수. 이것으로 죽었구나 싶지만 백에도 122, 124로 도강하는 필사적인 수법이 있다. 125, 127로 허리를 분지를 때 126, 128의 패로 버틴다. 그야말로 '사선(死線)의 저항'이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서 풀뿌리를 부여잡고 매달린 모습이다.

한상훈 초단은 대선배라 할 조한승 9단의 처절한 분투에 경건히 머리를 숙이고 있다. 하나 129로 툭 따내는 무덤덤한 손끝은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팻감이 없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듯하다.

조한승 9단도 문득 '너무 서둘렀구나' 하는 직감에 몸을 떤다. 122는 '참고도' 백1로 먼저 젖혀 흑 대마의 동태를 살펴야 했다. 흑2 받으면(지금은 손 빼기 힘들다) 그때 3으로 뛰어 실전의 수순을 진행시킨다. 이젠 A와 B가 확실한 팻감이 된다.

조 9단은 바로 이 점을 후회하고 있다. 삶에 너무 급급해 여유를 잃었구나 하는 후회, 그래서 타이밍을 놓치고 만 후회….

129로 따낸 상황에서 C로 젖히면 안 되는 것일까. 안 된다. 지금은 때가 늦었다. 흑은 빵빵 때려 패를 해소할 것이고 그 상황에선 C, D를 연타해도 E로 붙이면 대마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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