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거침없이 씹어라 … 기자의 '시원한' 에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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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
박선규 지음 미다스북스, 364쪽
1만3000원

KBS 기자인 저자가 취재현장과 일상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정리한 고급 에세이집이다. 그런데 구성이 교묘해 마지막 장을 덮으면 허를 찔렸다는 느낌이 든다.

도입부는 4남매의 장남인 저자가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31살 엄마와 함께 도시 빈민으로 살았던 유년시절이다. 그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증오 대신 사랑을 품도록 해 준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너는 똑똑한 아이니 어디 가서도 기죽지 말고 멋지게 자라라"고 등을 두드리며 가난한 제자의 손에 슬그머니 50원짜리 지폐를 쥐어줬던 담임 선생님들. 그 덕분에 집보다 학교가 더 좋았고 그래서 지금 인간노릇 하면서 살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그런 회고가 끝나면 눈이 튀어 나올만큼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시작된다. 처음엔 한국의 교육과 교사들에 대한 것이지만 비판의 칼날은 순식간에 사방을 향한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 얘기에서 시작해 실세 정치인들을 비틀어대고, 심지어 KBS의 정연주 사장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아슬아슬하다.

이 책엔 세가지 덕목이 있다. 첫째, 다양한 현장 경험이다. 소말리아 내전을 취재하며 "무정부가 독재보다 위험하구나"하는 걸 느끼고, 방송 토론을 진행하면서는 "뭐 이런 엉터리 전문가들이 많으냐"는 걸 확인한다. 거의 전부가 직접 겪은 내용이다. 둘째, 겸손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실명 비판'을 떠올릴 만큼 대놓고 욕한다. 그래서 시원하다. 물론 거론된 당사자들은 무척 화가 날 것 같다. 끝으로,읽고 나면 생각할 게 꽤 있다. 나름대로 탄탄한 논리와 주장이 담겨서다.

추천사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썼다. 하지만 책 내용은 이른바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좌파 이상주의의 공허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많다. 그가 대학때 강제 징집을 당했던 운동권 출신이란걸 생각하면 그 또한 흥미롭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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