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교육 「혁명적」개선은 위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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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남도 교육청은 2학기부터 보충 자율학습을 폐지하고 일부 지역에선 학기중의 학원수강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아직은 일부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고교교육을 입시위주의 예속교육에서 벗어나게 하는 교육의 기본원칙을 실현하는 「혁명적」의미를 지닌다.
우리교육의 병폐가 대입준비생을 위한 주입식 암기교육에 있었다는 지적은 두말 할 것이 없다. 이런 기본적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경남도 교육청의 방침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결정이 과연 십여년래의 교육병폐를 단숨에 치유할 만큼 사전준비와 현실적 부작용을 감안해 취한 조치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정책이란 혁명적 조처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여론의 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 충분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이 뒷받침 되고 단계적으로 이뤄져야만 부작용을 줄이고 충격도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도교육청의 결정은 다분히 감정적 대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국영수 중심의 대학 본고사 부활은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무너뜨린다는 지적이 일선 교장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선 학교의 우려깊은 지적과 시정요구는 모두가 묵살되었다.
지난 21일에 열렸던 15개 시·도 교육감 회의는 대학측의 무성의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는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여기서 대부분의 교육감들은 심정적으로 고교교육이 대학의 예속물이 될 수 없다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본다.
대학본고사 부활을 강행한 대학 이기주의에 대한 불만과 울분이 바로 입시교육 폐지라는 감정적 결정으로 나타났다고 볼 소지가 다분히 있다.
뿐만아니라 사회의 모든 장치는 입시위주로 짜여있는데 우리학교만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 교육은 모두 학원과 과외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나고 고액 과열과외의 극성을 조장한다는 부작용이 생겨날 것이다. 개혁의 원칙은 좋지만 현실성이 위협을 받게된다.
원래 새 대입제도중의 대학수학 능력시험의 근본취지는 종래의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고 사고력과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대학이 도구과목 위주의 본고사 부활을 강행함에 따라 원래의 의도가 왜곡되었다.
그렇다면 대학본고사의 방향을 수정하고 원래의 취지를 따르는게 보다 원만한 교육개혁의 점진적 길이라고 우리는 본다.
대학 이기주의에 감정적 대응으로 맞서 입시교육 철폐를 단행하는 고교 이기주의 보다는 교육개혁 전체의 흐름속에서 대학과 고교교육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을 추구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합리적 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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