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문화 새로워져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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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회 및 시위의 허용여부를 앞으로는 민간인을 위원장으로 한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한 것은 건전한 집시문화의 정착을 위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난 89년 4월에 개정,공포된 현행 집시법은 과거보다는 국민의 집회 및 시위자유의 폭을 넓혔으나 그 허용여부를 관할 경찰서장이 판단,결정하게 되어있는등 여전히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넓어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개정된 집시법이 공포된 89년 4월이후에도 여전히 「원천봉쇄」와 「폭력시위」의 악순환은 거듭됐던 것이다.
치안유지의 책임을 맡은 경찰로서는 가능한한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려들건 뻔한 이치다. 더구나 우리 경찰처럼 정치적 중립성이 확고히 보장돼 있지 못한 형편에선 공익에 입각한 공정한 판단이 어려운게 사실이다.
따라서 집회 및 시위의 허용여부에 대한 판단을 경찰서장 대신 민간인이 참여하는 심사기구에서 맡기로 한 것은 우리 상황에선 불가피한 일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제도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이 심사위원회의 성격과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심사위원회가 형식적으로만 민간인의 참여를 허용할뿐 실제로는 당국의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구라면 눈가리고 아웅식밖에는 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심사위원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며,누구에 의해 선정되느냐에 있다.
우리는 바람직한 방향인 이번 개선조치가 또 한번 사문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객관적 기준에 의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이 선정되지 않는 한 시위문화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번 개선결정으로 법개정이 불가피해진 만큼 이 기회에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다른 조항들에 대한 개정작업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집회·시위의 주최자가 그 허용여부에 대한 결정에 이의가 있을때 법원에 적부심사를 요청할 수 있게 하고,법원이 빠른 시일내에 심사토록 하는 구제절차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인 만큼 사실상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 사실상의 각종 제한규정이나 복잡다단한 신고규정은 상당부분 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는 「보장」과 「보호」가 원칙이고 제한은 특수한 것이며 예외적인 것임을 분명히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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