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광고물 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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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현관에 들어서면서 꼭 편지함에 눈길을 주는 딸아이를 보면 웃음 짓게 된다. 그 앤 제법 편지 친구가 많다. 처음엔 매일 만나는 학교 친구의 편지를 자랑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게 보이길 꺼리는 눈치 더니 이젠 아무리 졸라도「남의 편질 왜 보자느냐」며 정색을 한다.
네가 남이냐 하고 쏘아붙였지만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이가 컸구나 하는 흐뭇함으로 달랠 수밖에….
제 엄마나 아빠에게 오는 우편물이 더 많은 걸 은근히 샘내던 그 애는 어느 날 낯설고 큰 봉투의 우편물을 받고 매우 좋아했다. 무슨 디자인학원인가 편집학원의 안내서였는데 아주 샅샅이 읽어보는 것이었다.
이어서 비슷한 유의 우편물이 몇 번 오는가 했더니 그 애의 관심이 퇴색한 듯 뜯기지도 않은 채 며칠씩 묵은 봉투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 정말 딱한 것은 이미 대학에 들어간 그 애에겐 전혀 소용이 없는 대입학원의 광고물이었다. 「내 이름과 주소를 어떻게 알았을까」하는 기쁨이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내가 누군 지도 변변히 모르는 구나」하는 실망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 좀더 심해지면 원치 않는 광고물이나 안내서 등은 받지 않겠다는 주장이 나올 차례다. 최근에는 전화를 통한 구입 권유도 성행하고 있는데 전화는 우편보다 더 고약하다. 우편물이야 미뤘다가 볼 수도 있고 싫으면 보다 말수도 있지만 전화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이「원치 않는 전화」공세가 하도 심해 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려고 전화세일즈 방식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 중이라 하는데 우리에게는 될 수 있는 한 이런 시대가 늦게 오기를 바란다. 전화보다는 우편이 사생활침해 면에서 덜하기 때문이다. 아직 십대를 못 벗어난 내 아이도 제 엄마에게 공개하기 싫은 영역이 있는데, 광고가 소비자의 생활을 함부로 침해해서야 되겠는가. 이재선<소비자보호원 대외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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