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법률 알기 쉽게 해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현실은 법 없이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법을 경멸하거나 법의 일상성쯤은 무시하려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관행은 세상을 더 복잡하게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보다 상식이 우선하는 세상이 진정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상식은 점차 도태되어 가고 인심은 흉흉하며 법을 모르면 대명천지에 벼락을 맞거나 알량하게 모은 재산이 거덜나는 풍상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다급해진 연후에 법전을 뒤진다,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사후약방문 격이어서 복장만 두드릴 뿐이다. 인내심이 어지간해선 법전이나 판례집을 읽어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바쁜 세상에 무슨 재주로 법리를 배우고 따질 수 있으랴.
법 이론에 밝은 사람들이야 함정 많은 법이 밥벌이에 좋고 자기들만의 영역으로 치부되어 명성을 얻으니 법이 쉽게 쓰여지기를 원치 않을게 뻔한 이치 아닌가. 그래서 사연 많은 사람들 사는 세상을 쳐다보는 게 즐거울 지도 모른다.
그런 판에 한기찬 변호사가 어쩌자고 알기 쉬운『재미있는 법률여행』이란 책을 써냈는지 그 속셈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 발간된 『재미있는 법률 여행』은 민법 가운데서도 재산법 편으로 1백50개의 흥미진진한 사건을 예화로 내세운 뒤에 명쾌한 해답을 간결하게 엮은 책이다.
법은 인간적이라기 보다는 기계적이 아니면 수학적인 것이어서 우리들의 보편적 상식의 틀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식은 인간적이어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 법은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명백성이 있다.
한기찬 변호사는 1백50개의 실례를 통해 재산법에 대해 정말 알기 쉽고 재미있게 판결을 적시하고 있다. 제1장 제1편의 예화를 소개하면 전편의 흐름과 법 지식을 얼마나 손쉽게 이해하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서 안 된다-신의 성실의 원칙>
김달중은 별장을 지어 여기서 노후를 보내려고 이수일의 임야 2천 평을 2천만 원에 사기로 하고 매매 계약을 체결.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렀다. 그런데 잔금을 치르던 날, 1백만 원이 부족하여 6개월 후에 1백만 원을 주되 월5푼의 이자를 물어주기로 하고 간신히 등기를 하였다.
그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일대에 어느 재벌이 골프장을 짓는다는 소문이 돌자 땅값이 폭등하였다. 이렇게 되자 이수일은 땅을 싸게 판 것이 억울해서 궁리 끝에 잔금을 안 주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다는 내용증명 우편을 김달중에게 보냈다.
이 계약은 해약된 것으로 보아야 할까?
(1)이수일의 해약통고로 계약은 해제되어, 땅은 다시 이수일의 소유가 된다.
(2)매매대금 중에서 못 받은 1백만 원이 차지하는 비율만큼 이수일 소유가 된다.
(3)여전히 김달중이 땅의 소유권자다.
이런 식으로 예문을 제시한 연후에 간결하게 법리를 덧붙이고 참고 조문과 어드바이스까지 첨부하여 한글을 깨우친 사람이면 누구라도 변호사 도움 없이 법리를 간파할 수 있게 조목조목 정리된 책이다.
군더더기가 없으면서도 일목요연하고 명쾌하게 법을 풀어준 저자의 공리는 혼돈의 세상에 하나의 촛불구실을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남의 땅에 심은 호박의 주인은 누구며, 유산상속 문제, 태아의 상속, 보증서의 도장, 구두언약과 서류계약, 매매계약, 권리금, 채무관계, 신원보증, 경계선, 등기문제, 간통, 고용, 임 대차, 위자료, 의사의 오진, 할부 매매, 이득분배 등 우리 일상에서 늘보고 듣고 겪는 제반 문제들을 간단 명료하면서도 정확하게 판결할 수 있도록 법률을 재미있게 선사하고 있다.
한번 손에 잡으면 그 재미와 사례가 우리들의 상식을 해맑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 책을 덮을 수 없는 마력으로 이끌어 가는 저자의 필력이 상큼해서 좋다.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형법·상법·소송법 등 생활법률 전반에 걸쳐 도합 10권의 시리즈를 펴내겠다고 열정을 보이는 저자의 후속 작품에 시민의 한사람으로, 그리고 한 변호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커다란 기대를 걸어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