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실장 감정 신뢰성에 초점/항소심판결 앞둔 「유서대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변호인,도덕·과학성 집중공격/“직접적인 관련없다”검찰주장/사안 뒤엎을 새증거없어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과 관련,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 피고인(27)에 대한 항소심공판이 9일 마무리돼 오는 20일로 예정된 재판부의 최종판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임대화 부장판사)심리로 진행된 이번 항소심재판에서는 예상대로 사안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새롭게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서감정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실장 김형영씨(53·구속중)가 지난 2월 뇌물수수사건으로 구속됐기때문에 문서감정의 신뢰성여부가 항소심재판의 초점이 되고 있다.
변호인측은 국과수 뇌물사건이라는 의외의 호재를 십분 이용,김실장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유사감정의 신뢰성에 대한 「흠집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문서감정과 관련해 돈을 받은 김실장이 과연 유서를 제대로 감정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실장은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하고 있으나 『감정만은 틀림없이 제대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인측은 또한 감정과정에서 김실장이 주먹구구식으로 감정에 임했다며 유서감정의 과학성문제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김실장은 재판과정에서 『두글씨체의 유사비율이 70%이상이면 동일필적,45%이하이면 상이필적으로 감정하고 45∼70%사이면 경험에 의해 동일여부를 판단한다』고 여러차례 밝혔으나 이를 계산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오랜 경험에 의해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지 정확한 수치계산을 통해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변호인측은 『검찰측이 의뢰한 12건의 감정자료중 4건을 김실장이 임의로 접수대장에서 누락시키는등 감정이 검찰측의도대로 불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측은 그러나 국과수사건과 이번 재판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김실장의 감정에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변호인측 증인으로 김씨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한송흠씨(27·회사원)는 『김씨의 흘림체와 정자체를 모두 알고 있는데 유서글씨가 김씨의 필적이 틀림없다』고 진술,변호인측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같은 김씨의 어릴적 친구인 안혜정씨(27·여·경찰관)는 『김씨로부터 10여통의 편지를 받아보아 김씨의 글씨를 잘 알고 있으나 유서글씨와 같은 흘림체 글씨를 본적이 없다』며 상반된 진술을 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미묘한 상황변화를 의식,이례적으로 국과수를 직접방문,감정자료들에 대한 서증조사를 실시하는등 신중한 자세를 보였었다.
현재까지 김실장이 감정한 문서에 대한 재검토 결과 허위로 감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2심에서의 변호인과 검찰의 공방전은 무승부인 셈.
적어도 김실장의 구속에 따라 검찰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실장의 감정이 허위였다는 직접증거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부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남정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