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모자 법정싸움 논란(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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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모잘못도 법으로 시정 찬/효도 가족규범 깨뜨린다 반/만화 5백권 버린 어머니에 배상판결
일본에서 최근 모자간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이에 대한 법원판결을 놓고 소송 자체 및 판결내용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이 소송사건은 원고와 피고가 3대에 걸친 가족간의 사건이라는 점과 소송의 원인이 맡긴 만화책의 처리문제,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법원판결 등으로 이어져 일본 사회에서 잘못된 가족문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판결을 놓고 충의효등 일본사회의 일반적인 가족규범을 깨뜨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가하면 자식이라도 타당한 의사는 법으로 존중하도록 부모에게 강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윤리를 설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찬성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문제의 소송은 현재 25세된 일본 가나가와(신내천)현에 사는 청년이 어머니와 삼촌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제소로 시작했다.
이 청년은 18세였던 지난 84년 이사하면서 할머니에게 그가 어렸을 적부터 애독했던 모험왕등 소년용 만화 5백10권을 맡겼었다. 만화를 맡았던 할머니는 손자가 이미 이들 소년용 만화를 보기에는 다자랐다고 판단,만화책을 모두 내다 버렸다.
이 청년은 7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이 사실을 알고 할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 했었다. 그는 할머니가 지난 88년 이미 세상을 떠나 소송상대자가 없자 할머니의 법적 상속인인 자신의 어머니와 삼촌내외를 상대로 30만엔(약 1백8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삼촌 내외는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조카가 만화를 맡긴 사실이나 할머니가 버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또 이 청년의 어머니는 할머니가 손자의 양해하에 만화를 버렸다고 주장하는등 만화 때문에 온 집안이 법정에서 사뭇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 청년의 어머니가 더이상 재판을 끈다는 것은 집안망신이라고 판단,아들의 주장이 옳다고 법정에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4일 어머니가 원고인 아들에게 20만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가족간의 법적 갈등은 가정재판소에서 맡아 조정으로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청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책을 버린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리고 싶다』며 정식재판 청구이유를 밝혔다.
이 재판에 대해 류자키(용기희조) 니가타(신사)대교수는 『법률상으로는 책을 맡았다가 멋대로 버린 사람에게 배상책임이 있다. 따라서 계약위반에 대해 손해배상판결을 내린 재판은 법률상 문제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부모자식간에 손해배상판결을 내린 것은 역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43년 아들이 자신의 토지를 무단 경작한 부모를 상대로 제소한데 대해 대법원이 『충의·효행에 위반되며 소권의 남용』이라고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예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작가 미다마사히로(삼전성광)씨는 『다른 사람들이 볼때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도 그 청년에게는 비할데 없이 중요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번 소송사건은 부모자식간에 대화가 부족해서 일어난 것으로 배상은 당연하다』고 판결을 지지했다.
그는 이번 판결이 가치관이 다양화해지고 가족간에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가족간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키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평론가 사키류조(좌목릉삼)씨는 『법률에 따라 잘잘못을 기계적으로 파정하는 재판에 가정문제를 끌고 들어가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며 이번 재판이 일본의 가족관계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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