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무원 '낮술 = 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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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에 희주(喜酒)라는 말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가 하객들에게 권하는 술이다. 하객들은 이 술을 마시면서 새내기 부부의 행복을 기원한다. 따라서 희주를 거부하면 큰 실례다.

허난(河南)성 남단 신양(信陽)시의 한 주민은 지난주 결혼식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피로연 식탁 위에 희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잔 대신 찻잔이 놓여 있었다. 희주 대신 희차(喜茶)가 등장한 셈이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하객의 상당수가 공무원이어서 술을 치웠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이 보도한 사연은 이랬다. 최근 왕톄(王鐵) 신양시 당서기가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앞으로 낮술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술을 마시고 일하면 능률이 떨어지는 건 물론 공무원이 낮에 술 냄새를 풍기면 시민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지시에 따라 낮술 금지를 담은 문건이 만들어져 산하 행정단위에 전달됐다. 위반자에게는 '현장 면직'이라는 엄벌도 명기된 문서였다. 낮술 단속을 위한 기동대도 조직됐다. 당 기율검사위원회의 감사반이 점심시간 이후 불시에 사무실을 급습해 음주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다. 음주 사실이 적발되면 기율위에 회부돼 추가 조사를 받은 뒤 해고될 수 있다. 감사반에는 먼저 면직시킨 뒤 나중에 보고해도 좋다는 특권까지 부여됐다. 실제로 9일에는 황강(黃崗)향 양곡.석유 구매국의 회계사 두 명이 낮술을 먹은 사실이 드러나 현장에서 바로 면직 통보를 받았다.

왕톄 서기는 낮술만 금지한 것이 아니었다. 공무원이 시민들에게 한 약속이나 시에서 결정된 사항을 제때 이행하지 않아도 단속 대상이 된다. 마작과 같은 도박을 하거나, 식당이나 사우나에서 특별회원 카드를 받아 공짜로 드나드는 경우도 감사반에 걸리면 혼이 난다. 일을 대충대충하거나 부패한 관리들을 솎아낸다는 것이 그의 복무지침이다. 일부에서는 지방 공무원들의 이런 행태가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과연 뿌리가 뽑힐지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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