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지연 배상시비가 골치(신도시 이것이 문제다: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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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얼마나 늦춰야 하나/공기 늦어질수록 난제 수두룩/집값 뛸까 대폭 연기도 곤란/업체,정부지원 요구/이사 계획 짠 입주자만 골탕
정부는 결국 신도시분양·착공연기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26일 관계장관회의까지만 해도 신도시만큼은 절대로 늦출 수 없다고 하더니 결국 심각한 자재·인력난 등을 인식,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부실신도시 사건이 터졌을때부터 전문가들은 건설수요조정,즉 공기연장을 해결의 열쇠로 제시했었다. 품질관리 또는 건설수요조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수요가 계속 공급을 초과하는 상태에서 품질관리는 불가능하므로 마땅히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이미 시작한 것을 늦추기는 어려우므로 새로운 사업을 자재수급사정 등을 감안,늦춰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꼭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 품질관리를 제대로 해가면서 시공해야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많다.
과연 늦추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어느 정도를 늦추느냐다. 또 늦추게되면 그에 따른 배상·보상시비가 뒤따르게 된다.
정부의 신도시건설계획은 89년 4월 당시 치솟는 집값을 누그러 뜨려야겠다는 「비상조치」였다.
최근들어 집값상승세가 둔화되는등 그 효과가 조금 나타나고 있는데 연기할 경우 다시 오를까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방도시의 아파트건설을 늦추고 신도시도 단위아파트의 시공기간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분양 및 착공일정은 성역화해왔다.
그러나 이제 분양·착공연기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상 앞으로 나타날 여러가지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어느 정도 늦추느냐다.
이와 관련,대폭적인 연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다. 무턱대고 마냥 늦출 경우 공급감소→주택난→집값상승의 악순환이 재연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또 단위 아파트의 시공기간을 10개월 안팎까지 늦추기로 이미 방침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분양·착공 시기를 늦추는 것이 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연기일정을 정할때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게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일정연기의 실효성이다.
5개 신도시의 경우 공사물량기준으로는 전체 30만가구의 10% 정도만이 이뤄진 상태지만 분양률은 40%에 이르고 있다.
이미 분양된 40%는 착공됐을뿐 아니라 시공기간연장조치를 소급적용 하지 않는다면 연기대상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분양·착공·완공일정을 모두 늦춘다해도 나머지 60%에만 적용되며,대폭 연기도 어려워 얼마만큼 수요감소효과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일정연기에 따른 배상·책임문제다.
주택공급규칙에 의하면 사업시행자가 입주예정일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에는 입주예정자들에게 계약·중도금등 이미 납입한 돈에 은행연체이자율 연19%를 적용한 지체보상금을 물게 돼 있다.
「천재지변등에 의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은 있으나 이번과 같은 부실시공에 따른 경우는 이같은 적용을 받을 수가 없다.
올들어서부터는 분양일정도 이미 1∼2개월씩 늦어지고 있는 상태이고 기존 분양분도 설령 정부가 완공기일을 지키라고 하더라도 자재·인력난 등으로 사실상 지키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분당시범단지 첫입주분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도시 공사가 당초 예정보다 최소한 몇달씩은 늦어져있기도 하다.
특히 이번 부실시공사건을 계기로 품질관리가 강화되면 지금 공사추진속도 보다도 더욱 늦어질 수 밖에 없고 입주가 본격화 되면 이 문제가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입주예정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법규에 명시돼 있을뿐 아니라 건설회사와 입주예정자간의 계약사항이므로 건설회사는 당연히 보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같은 보상사태가 대량으로 발생할 전망이어서 몹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에 대해 ▲시공기간 연장조치를 소급적용 받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정부가 지원을 해 줄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기를 지키지 못하게되는 것 자체는 각 건설업체에 일차적 책임이 있으나 2백만호 주택건설정책등 정부의 시책에 따르다가 발생한 것이므로 정부가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현재로선 이 두가지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을 방침이다.
업계는 일단 『지금까지 분양한 물량에 대해서는 완공기일을 지키겠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으로 이 문제는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또 부실시공에 따른 하자보수문제,입주지연에 따른 전세금상승,입주에 대비한 부동산처분으로 인한 손해문제 등도 있다.
예정일에 당연히 입주할 것으로 알고 이사계획을 짠 입주예정자는 당황할 수 밖에 없으며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부실이란 게 따로 있는게 아니다. 서두르다 보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고대에서부터 건축하려는 도시가 있으면 옆에 충분한 자재원이 있어야 한다는게 건축이론상 정설이었다. 수요·공급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정부가 한바탕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양재찬·민병관·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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