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아진 광역 당선자들/정용백 사회부기자·부산(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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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년만에 다시 돋아난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워나갈 선량들을 가린 투표가 20일 오후 6시 마감되면서 후보자들의 수그러졌던 고개가 다시 하늘로 치켜올라가기 시작했다.
코가 땅에 닿도록 연신 굽신거리며 지역 주민들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모실듯 주민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던 선거운동때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시의회 금배지만 눈앞에 아른 거릴뿐 「돈 없고 힘 없는」 주민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이는 듯 오만과 거드름으로 가득 찬 모습도 나타났다.
후보자들의 면면이 부동산투기나 건축·주택사업으로 갑자기 떼돈을 번 「돈은 있으나 명예가 필요했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일들은 이미 예견돼 왔던 것이기도 하다.
당락을 염려해 후보선거사무실을 찾은 이웃 주민들은 이미 귀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전직 고위관료 출신으로 관심을 모았던 부산 남구 K모 당선자(61)는 투표가 끝나기 무섭게 그동안 강행군 탓인지 유권자들에 대한 감사인사는 뒷전인채 휴식이 필요하다며 잠적(?)해 버렸다.
축하인사차 선거사무실을 찾은 이웃 주민들은 운동원들로부터도 냉대를 받고 뒤돌아서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선이 확정될 무렵인 20일 오후 11시쯤 해운대구 개표장인 부산기계공고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낸 S모 당선자(63)는 골목길을 누비며 주민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던 그가 아니었다.
어느새 시의원임을 알아차린 지역주민들이 입장이 뒤바뀌어 다퉈 손을 내밀자 지역주민들을 굽어 내려보기라도 하듯 중앙정치판의 의원님을 이미 닮아가고 있었다.
당선을 확인한 해운대구 P모 당선자(57)는 지구당보좌관의 안내로 개표장내 당선사례인사를 돌다 『개표가 진행중이니 끝난후에 해달라』는 선관위 관계자의 지극히 당연한 요청에 보좌관이 앞서 『의원님을 몰라보느냐』는 식의 오만불손을 여지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시계바늘이 21일 오전 3시쯤으로 향할 무렵 민주당의 참패가 현실로 다가서면서 유세기간중 쏟아졌던 지역개발 공약들이 체육관을 가득 메운 민자당 후보 당선자들의 환희속으로 증발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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