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대립 막을 완충력 키우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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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검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검찰과 김양 유족 및 대책위가 충돌직전에 극적 합의를 본 것은 다행한 일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건간에 이 문제로 해서 새로운 사태가 빚어져 또다시 사회가 혼란과 긴장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던게 대다수 국민의 심정이었다고 믿는다.
이번 극적 합의는 성균관대 장을병 총장,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 등 여러 인사들의 적극적인 중재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도되었다. 사람들중엔 이런 중재노력조차도 상황의 압력에 밀려 타협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를 그런 쪽으로만 해석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된 생각일 것이다. 부검거부를 더이상 고집하기 어려운 상황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겠으나 그보다는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려는 합리적 자세가 그런 중재를 가능케 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일이 벌어졌다 하면 으레 극단과 극단이 직접적으로 맞닥뜨려온 우리 사회에서 이제 그들 중간에서 극한적인 대립을 완충하려는 기운이 싹트고 있는데 고무받는다. 이번의 중재노력 뿐 아니라 지난 5일 고려대생들의 시위에 인근 주민들이 나서 충돌의 확산을 막는 것도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맥락의 움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사회에도 위기극복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오랜 극한대립의 과정과 그로 인한 폐해를 몸으로 체험해오는 동안 그 힘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타협과 절충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이러한 자생적인 위기극복력을 우리들 모두가 함께 키워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극한적 대립없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긴요한 것은 역시 권력쪽의 자제와 금도일 것이다. 극한적 대립을 벗어나려면 힘이 강한 쪽에서 먼저 양보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의 시국을 원만히 풀어가는데 있어서는 당국의 문제인식과 행동방향이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총리서리에 대한 외국어대생들의 폭행사건으로 운동권 학생이나 재야쪽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을 절호의 기회로 인식해 무리수를 둔다면 사태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릴 것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정부당국은 냉정하고 이성적인 대응으로 법질서의 공정성과 참다운 권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명동성당이나 백병원에서 법집행이 좌절되고 마치 치외법권이 존재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 용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공권력에 대한 고질적 불신도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에 어렵게 조성된 새분위기를 갈등해소의 새 방식으로 유도하려면 정부는 감정적·보복적 강경대응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성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제의 표면적 양상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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