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주택조합 특혜분양사건/정 회장·농협직원이 “주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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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 회장에 2억받고 가담/청원서등 집단민원 주도/고진석씨/정 회장은 로비 전담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은 한보의 정태수 회장과 정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건네받은 26개 연합주택조합 간사인 농협 말단직원 고진석씨(38·농협인력개발부 서기)가 합작으로 연출해낸 「이권놀음」에서 비롯된 것임이 검찰수사결과 밝혀졌다.
동시에 청와대·건설부·국회·서울시는 이들의 각본에 놀아난 꼭두각시 「조연배우」 역할을 담당했음이 5일째 검찰의 집중조사를 받고 있는 고씨의 「양심선언성」 진술과 12일 밤 정회장에 대한 철야조사 결과 드러났다.
◇정·고 각본=고씨는 11일 밤 검찰에서 자신이 정회장으로부터 사례비조로 88년 6월 하순 1억2천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90년 5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2억원을 받은 사실과 정씨가 정·관계인사들에게 제공한 뇌물 액수 등에 대해 상세히 진술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밝혔다.
정회장은 자신이 매입한 수서지구 5만여평 땅이 89년 3월21일 공영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사실상 분양받기가 힘들게되자 「집단민원+로비」를 통해 풀기로 하고 고씨를 포섭했다.
고씨는 정회장의 제의를 수락,88년 6월20일 단 10명으로 설립인가 받은 농협주택조합에 수서지구 지구지정 4개월 후인 89년 7월 10일 무려 1천1백89명의 농협직원을 추가로 등록시켰다.
정씨가 고씨를 선택한 것은 농협이 지점망·인적구성상 끌어들이기 쉬워 「다수의 집단민원을 통한 정당성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씨는 이 과정에서 농협의 거의 모든 서울시내 지점과 인천·부천 등지의 지점까지도 포섭했으며 가입조합원들에게 32평형 아파트를 5천62만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정·고 두사람은 정회장이 행정부·국회 등 고위층에 대한 「로비」를,고씨가 「집단민원」으로 명분을 만드는 역할분담으로 특혜분양 결정을 이끌어낸 셈이다.
◇집단민원=고씨는 26개 주택조합장을 동원,89년말부터 진정서등 집단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89년 10월 서울시에 몰려가 특혜분양을 요구한데 이어 12월 청와대에 「생존권차원」임을 주장,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이에 청와대가 90년 2월 서울시에 적극 검토를 지시했고 서울시가 『건설부의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하자 5월 서울시의 법개정 건의에 맞춰 건설부에 진정서 및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건설부가 「불가」 회신을 내자 국회로 방향을 선회,민자·평민 양 당사를 계속 찾았으며 사퇴정국이 계속되던 8월에는 음료수 2박스와 함께 평민당농성장을 찾기도 했다.
고씨는 두차례에 걸쳐 김대중 총재를 만나 선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8월 이승윤 부총리·권영각 건설부장관 등이 참석한 당정회의에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국회청원」이 마지막 열쇠로 판단,산업은행 정성태씨(35·조합장)를 대표로 3천3백60명의 청원을 제기했다.
정씨는 『서울시를 수십차례,국회·정당을 10여차례 찾아갔다』고 말했다.
정회장은 고씨의 집단민원 순서에 따라 거액의 로비자금을 뿌린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로비의 순서는 청와대→서울시→건설부→국회순. 한편 고씨는 정회장으로부터 받은 사례금으로 순천에 부동산을 구입하고 증권에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목적=정회장은 아파트건설로 생기는 이익보다 이를 아산만 철강단지 조성사업의 기반으로 이용하려 했다.
고씨는 검찰에서 『정회장이 아산만사업에 강한 집착을 보여 수서 로비과정에서 맺은 정·관계 유력인사와의 유착관계와 명성을 십분 이용하려 했다』며 『한보가 수서를 풀었다는 사실을 한보의 막강한 힘으로 과시하려 했다』고 진술했다.<이상언·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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