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유서도 안 남겼을까’…유품서 말기암 진단서 나왔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1.09

주인 잃은 화초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떠난 주인을 따르듯 비명도 없는 고독한 죽음이었다.
집 안은 적막했다.

의뢰인은 아들이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베란다였다.
넝쿨식물이 매달려 있었다.
이름이 ‘호야’라고 했던가.

열려 있는 베란다 문 사이로 축 늘어진 채 죽어가는 식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몇 개는 살리려고 했는지 식물 영양제가 꽂혀 있었다.

임대아파트에선 고독사가 참 많이도 발생한다.
똑같은 구조라서 그런지 처음 오는 동네인데도 마치 왔던 곳같이 느껴지곤 한다.

어쩜 늘 그 자리엔 냉장고가 있다.
좁은 공간에서 각자 머리를 짜냈겠지만, 결국은 같은 공간에 비슷한 물건들이 놓인다.
안 좋게 끝난 그들의 삶처럼 살림살이들도 판박이였다.
무서운 데칼코마니 같았다.

내가 일하는 동안 고인의 아들은 집 안에서 쉼 없이 흐느꼈다.
비워지는 유품들의 무게만큼 슬픔이 그의 마음으로 옮겨져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고인이 끝까지 애써 살려 보려 했던 화초들은 마지막까지 들어낼 수 없었다.
나도 멍하니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은 자가 마지막까지 살리려 했던 식물의 죽음.
그냥 ‘물건’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아버지는 30대 후반에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쭉 신장투석을 하셨어요.”
“40대 후반에 혼자가 되셨어요.”
“얼마 전에 제가 결혼을 했어요.”
“지난번에 전화 드릴 때도 다른 점이 없었어요. 그냥 괜찮다고 하시니까….”

내가 눈빛으로 물은 것을 잘못 넘겨짚었는지 아들은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 나도 달리 대꾸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후회를 다독여 주기도 뭣했고, 아직 젊은 그의 앞날에 대한 응원도 지금은 부적절했다.
그도 그저 아무에게도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모르는 내게라도…,
아니 모르는 남이니까 오히려 내게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