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과 눈도 안 마주쳤다, 그녀는 중요한 말은 쏙 뺐다 [박근혜 회고록 35]

  • 카드 발행 일시2023.12.20

특검에 이어 수사를 진행한 검찰이 나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죄목은 뇌물수수, 직권남용, 강요 등 18개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중에서도 검찰이 가장 공들인 것은 나를 뇌물죄로 기소하는 것이었다. 직권남용 등으로는 탄핵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검찰은 내가 최서원 원장과 결탁해 기업들로부터 무려 592억원 상당의 뇌물수수를 시도했고, 이 중 298억원을 실제로 수수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인생에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고, 그로 인해 국가에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들에 돈을 요구하고 사익을 챙기려 했다는 검찰의 주장만큼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전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는 처음부터 ‘뇌물수수’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그를 향해 전진할 뿐이었고, 뇌물수수를 인정하는 답변을 끌어내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 적어도 뇌물 문제만큼은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재판 역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재판이 열린 2017년 5월 23일은 잊을 수가 없다. 밖에서는 이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이라며 얼마 전 대선에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과 재판을 받는 나의 처지를 대비하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것을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변호인단은 내가 호송차를 탈 때 수갑을 차게 한 것에 대해 이전 다른 대통령들의 사례와 비교해 봐도 가혹한 처사라고 분개했다. 나는 그런 것을 하나하나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례적으로 재판석에 대한 촬영을 허용한 것을 보면서 재판부가 다른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사실 이런 문제보다 재판 과정에서 더 힘들었던 것은 한때 내 편이라 믿고 함께했던 이들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를 이용해 사익을 취했던 추한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고,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증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정서 대면한 최서원, 사익 추구는 쏙 빼놨다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는 법원종합청사 대법정에 나란히 앉아 재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2017년 5월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는 법원종합청사 대법정에 나란히 앉아 재판을 받았다. 중앙포토

내 재판은 앞서 진행됐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원장의 뇌물죄 및 알선수재 등을 다루는 재판과 병합됐다. 그에 따라 나는 최 원장과 같은 법정에 서게 됐다. 솔직히 나는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검찰 조사에서 알게 된 그녀의 모습은 내가 알던 최서원과는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그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심 없이 나를 도와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마음 한편에서는 그녀가 사실대로 말하고 진실을 밝히는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