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나 사실대로 말 안했다” 검찰조사 그날, 박근혜의 고백 [박근혜 회고록 36]

  • 카드 발행 일시2023.12.21

어떤 사람들은 미르재단 등이 최서원 원장을 위해 설립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솔직히 쓴웃음이 나올 정도다. 나는 일생 옷이든 집이든 모두 내 돈으로 지불했고, 최 원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녀를 위해 재단을 만든다는 말인가? 그녀와 나의 관계를 실제로 봐 온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녀와 오랜 기간 교류하면서 그녀가 문화와 체육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간혹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빛내면서 의견을 내곤 했는데, 그중에는 상당히 참신하다고 여길 만한 것들도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평소 생각인지 아니면 주변의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는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당시 나는 최 원장이 문화에 식견이 있다고 생각했고, 2015년 문화융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할 때도 최 원장의 이야기들이 내게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내가 민간 차원에서 문화스포츠 재단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최 원장에게 했을 때 최 원장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아는 나로서는 그것이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이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선의로 나를 도우려는 줄만 알았다. 재단이 설립된 뒤에도 최 원장이 간혹 재단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재단 홍보 담당자와 아는 사이라서 우연히 전해 들은 것처럼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이때 조금 더 그녀에 대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재단 이사진 최순실에게 추천받아…한스러운 큰 실수

2018년 5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 속행공판에 출석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중앙포토

2018년 5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 속행공판에 출석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중앙포토

이때 내가 그녀의 의견을 듣기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로 한스러운 큰 실수를 한 것이 있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이사진을 구성할 때 최 원장으로부터 이사진을 추천받은 것은 사실이다. 미르재단은 기업에서 출연해 만들어 민간이 주도하는 재단이긴 해도 정부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지원하는 재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나 이념으로 논란이 있는 인사들이 들어오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문화계에 좌편향적인 인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부당하게 이권을 행사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는 보고를 여러 군데서 받고 있던 나는 이념이나 정치와 무관한 인사들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인사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최 원장이 나와 이야기하던 도중에 이런 말을 했다. 그녀는 “재단 이사들을 모두 전경련에서 추천받아서 선임하면, 기업에서는 정치나 이념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자칫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제가 알고 있는 문화·체육계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아볼 테니 참고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실제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만큼 나는 “주변에서 좋은 분을 추천받으면 명단을 보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정호성 비서관을 통해 최씨가 보내온 인사들의 명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