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아베 압박한 오바마 “위안부는 끔찍한 인권침해” [박근혜 회고록 23 - 대미외교 (하)]

  • 카드 발행 일시2023.11.22

2014년 4월 25일 1박 2일 일정으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그때는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나라 전체 분위기가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미국 측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도를 표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일정을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외국 정상 방문 시 청와대 본관 앞에서 진행되는 취타대 연주나 어린이환영단 행사 등은 모두 생략했다. 환영 만찬도 음악 없이 진행됐다. 정상회담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사회가 빠진 슬픔에 깊은 위로를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1월 21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갈라만찬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1월 21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갈라만찬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중앙포토

그는 회담에 앞서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 사망자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묵념을 제안했다. 이어 삼각 나무상자에 담긴 성조기를 전달하면서 “미국에는 군인이나 참전용사가 목숨을 잃었을 때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국기를 증정하는 전통이 있다”며 “사고일 백악관에 게양됐던 조기(弔旗)”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단원고에 전해 달라며 백악관의 목련 묘목도 가져왔다. “봄마다 꽃이 피는 목련은 부활을 의미한다. 목련과 성조기는 아름다운 생명과 한·미 양국의 우정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이 미국 대사관의 설명이었다. 1년 만에 만난 우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5시간 가까이 허심탄회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2014년 4월 25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후에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사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백악관은 당초 일본 방문만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 방문 후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중앙포토

2014년 4월 25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후에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사열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백악관은 당초 일본 방문만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 방문 후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중앙포토

이튿날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용산 한미연합사를 찾았다. 양국 정상이 공동 방문한 것은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처음이었다. 이날 커티스 스캐퍼로티 연합사령관으로부터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보고받았다. 오래전에 EU를 방문했을 때 그쪽 인사들이 한미연합사 시스템에 대해 부러워하면서 유럽도 도입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연합 방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령관은 미국인, 부사령관은 한국인을 배치하는 등 층층이 양국 군인들을 배치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우리는 동맹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어와 영어로 “같이 갑시다, 위 고 투게더(We go together)!”라고 외쳐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나중의 일이지만, 내가 201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펜타곤에서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의장대를 사열했다. 나는 “한국과 미국의 장병들은 한·미 동맹의 심장이고, 한·미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고 말한 뒤 “Korea thanks you, We go together”라고 말하자, 미국 장병들이 우리말로 “같이 갑시다”로 화답했다.

오바마, 아베 면전에서 “역사 문제, 한·미·일 협력 저해”

2014년 4월 26일 오전 방한 이틀째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콜리어필드에서 주한미군 병사를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4월 26일 오전 방한 이틀째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콜리어필드에서 주한미군 병사를 대상으로 연설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2014년 답방은 당초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2013년 10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취소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되살린 것이었는데 당초 순방 국가(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한국은 빠져 있었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요청으로 18년 만에 국빈 방문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역사교과서 등으로 우경화 행보를 걷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일본만 가고 한국을 지나칠 경우 좋지 않은 메시지로 비칠 수 있겠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이를 미국 측에 설명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한국 답방을 1박 2일 일정으로 넣었다. 우리로서는 고무적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