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공들여 성공한 첫 방미…하필 그때 윤창중이 사고쳤다 [박근혜 회고록 22 - 대미외교 (상)]

  • 카드 발행 일시2023.11.21

미국은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래서 취임과 동시에 미국의 초청을 받아들여 첫 번째로 미국 순방에 나섰다. 특히 내가 대통령에 있던 기간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도발을 한층 강화하던 시기였다. 취임 직전 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남북 간 불가침합의 파기, 개성공단 통행 차단 등이 연이어 벌어졌다. 한·미 동맹을 통해 안보를 지켜 온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5월 7일 오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3년 5월 7일 오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사전 준비가 중요하지만, 미국 순방은 말할 것도 없다. 정상회담에서 다룰 주제와 각종 행사가 세세한 조율과 논의를 통해 추진된다. 나는 순방에 앞서 이한구(새누리당 원내대표)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정책협의대표단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내놓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전달했는데 다행히도 오바마 대통령 측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비롯한 여러 구상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으며,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와 일치한다며 신뢰와 기대를 드러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를 보고받고 나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뉴욕서 헬기 동원 입체 경호, 외교부 “처음 있는 일”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5일 오후 미국 뉴욕의 아스토리아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뉴욕동포 간담회장에서 남녀 어린이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고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5일 오후 미국 뉴욕의 아스토리아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뉴욕동포 간담회장에서 남녀 어린이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고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5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부터 나는 미국이 우리를 우방과 동맹국으로서 중시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JFK공항부터 뉴욕에 있는 숙소 아스토리아 호텔로 가는 동안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호위하고 지상에서는 별도의 교통 통제가 진행되는 등 입체적 경호가 있었다. 뉴욕은 유엔본부도 있고 해외 정상들이 워낙 자주 오기 때문에 이처럼 교통 통제를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외교부에서는 ‘뉴욕의 교통 통제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알려줬다.

5월 6일 워싱턴 DC 알링턴 국립묘지와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로 4박6일의 미국 방문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이곳은 8년 전에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라 감회가 더욱 깊었다.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은 해였기 때문일까. 이날 미군 군악대가 애국가를 연주하는데 ‘우리 국가가 이렇게 웅장하고 멋있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때의 감동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한국전 참전기념비 벽화에 조각된 ‘19인상’은 모두 얼굴이 다른데 실제 참전 용사들의 얼굴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한쪽 팔이 잘린 조각상의 모델이 당시 25세였던 웨버 예비역 대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이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설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다시 한번 뭉클해졌다.

무명용사탑과 국립묘지기념관을 둘러보면서도 미국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해서는 매우 정중하게 예우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안내하던 큐레이터는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유전자 검사로 유골의 신원 식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앞으로 전쟁으로 인한 실종자는 나오더라도 무명용사는 더는 없겠군요”라고 말했는데 그 장면이 지금까지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