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는 건 진즉에 포기했다. 헤엄을 멈추면 죽는 그 어떤 물고기처럼 그는 비좁은 호텔 방을 쉴 새 없이 맴돌았다.
이윽고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니 또 다른 남자가 들어섰다. 뒤이어 순차적으로 두 명이 더 그 방을 채웠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금액이 너무 큽니다. 영장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검 중수2과장 김진태(전 검찰총장)의 입에서 결국 그 말이 나왔다. 그와 근무 공간을 공유하던 검찰총장 이명재,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만(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그 대사를 미리 접한 듯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 남태령을 넘어온 법무부 장관 송정호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정권의 실세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그를 괴롭혔다.
대통령께서 잠을 못 주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들은 사실상의 수사지휘권 발동 요구를 하고 있었다. 법무·검찰의 수뇌부가 호텔 방에 은밀하게 모여 논의하던 그 대상, 즉 대통령의 차남을 불구속기소 하도록 검찰총장을 지휘하라는 게 정권의 내심이자 요구였다.
그럴 법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대통령의 막내아들이 구속된 게 겨우 한 달 전이었다.
게다가 송정호는 정권의 ‘믿는 구석’이었다. 정권은 불가항력적으로 등 떠밀리듯 임명했지만,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TK(대구·경북) 총장을 견제하라는 취지에서 전북 익산 출신인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