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은 봐주려 했다”...두 아들 수사 막전막후

  • 카드 발행 일시2023.11.15

야 인마, 수사 천천히 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만(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송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높은 데시벨의 육성은 전화선을 타고 큰길을 건너 서울지검 특수2부장실에 송신됐다.

그 방의 주인인 차동민(전 서울고검장)은 박만의 인천 제물포고, 서울대 법대 직속 후배였다.

2002년 4월 1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만이 김홍업 등에 대한 수사 계획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4월 1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만이 김홍업 등에 대한 수사 계획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던 건 고향과 학교만이 아니었다. 둘 다 매우 골치 아픈 수사 대상을 다루고 있었다.

박만은 ‘대통령의 차남’, 차동민은 ‘대통령의 3남’이었다. 두 사람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사 속도를 맞추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게 어그러지고 있었다. 특수2부의 수사 속도가 너무 빨랐다.

특검팀이 꼬리 잡고, 검찰이 몸통 맡았다   

차정일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였다. 2002년 3월 25일 특검보 이상수 등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핵심 멤버들이 도열한 가운데 그가 수사 결과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2002년 3월 2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 차정일(오른쪽). 특검보 이상수(왼쪽)가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 3월 2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 차정일(오른쪽). 특검보 이상수(왼쪽)가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중앙포토

105일 대장정의 대미는 화려했다. ‘아태평화재단 비자금 의혹’이 정점이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