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인마, 수사 천천히 해!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박만(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송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높은 데시벨의 육성은 전화선을 타고 큰길을 건너 서울지검 특수2부장실에 송신됐다.
그 방의 주인인 차동민(전 서울고검장)은 박만의 인천 제물포고, 서울대 법대 직속 후배였다.
당시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던 건 고향과 학교만이 아니었다. 둘 다 매우 골치 아픈 수사 대상을 다루고 있었다.
박만은 ‘대통령의 차남’, 차동민은 ‘대통령의 3남’이었다. 두 사람은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사 속도를 맞추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게 어그러지고 있었다. 특수2부의 수사 속도가 너무 빨랐다.
특검팀이 꼬리 잡고, 검찰이 몸통 맡았다
차정일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였다. 2002년 3월 25일 특검보 이상수 등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의 핵심 멤버들이 도열한 가운데 그가 수사 결과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105일 대장정의 대미는 화려했다. ‘아태평화재단 비자금 의혹’이 정점이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