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연락 끊은 유승민…그와의 관계 그때 파탄 났다 [박근혜 회고록 19 - 당청관계 (상)]

  • 카드 발행 일시2023.11.14

한국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미묘하다. 집권 초에는 청와대와 여당이 일심동체처럼 움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양쪽의 견해차가 점점 심해진다. 더는 선거에 나설 필요가 없는 대통령은 정해진 5년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을 최우선 목표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선거에 도움이 안 되면 여당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 입장에서 여당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성공적인 국정 운영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재임 중에 새누리당과의 관계를 보다 원만히 풀어가지 못한 건 큰 회한으로 남아있다.

당·청 관계에서 전기점이 생긴 것은 2014년 7·14 전당대회였다. 황우여 대표가 2년의 임기를 마친 뒤 새 대표를 뽑는 경선이 벌어졌는데 서청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나는 개인적인 관계로 볼 때 서청원 의원이 여당 대표가 되는 게 당·청 관계에 좀 더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당내 친박계가 주로 서 의원을 밀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경선에 개입하면 부작용이 클 게 뻔해 내 의중을 내비치는 것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잖아도 서 의원과 김 의원이 세게 충돌하면서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나는 경선 당일 잠실체육관에 가 ‘1호 당원’으로서 인사말을 통해 “치열한 경선 과정에서 주고받은 서운한 감정은 잊고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친박 좌장’ 서청원 꺾고 대표된 김무성

2014년 7월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오른쪽)이 대표로 선출됐다. 왼쪽은 서청원 의원. 중앙포토

2014년 7월 14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오른쪽)이 대표로 선출됐다. 왼쪽은 서청원 의원. 중앙포토

뚜껑을 열어 보니 김무성 의원이 29.6%의 득표율로 서청원 의원(21.5%)을 예상보다 큰 격차로 이기고 새 당 대표가 됐다. 당시 경선 결과에 대한 보고를 들어보니 김 의원이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고 공약한 게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다고 한다.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은 정당 민주화라는 대의명분만 놓고 보면 이상적인 제도다. 민주주의의 전통이 굳건한 구미 선진국에선 보편화된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풀뿌리 정당정치 기반이 아직 취약한 한국에선 상향식 공천이 자칫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정치 신인들은 각종 규제로 꽁꽁 묶여 있기 때문에 경선에서 자금·조직력·인지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현역 의원들이나 당협위원장을 꺾기란 굉장히 어렵다. 나는 그런 부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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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언론에선 나와 김무성 의원을 애증의 관계로 묘사하곤 했다. 김 의원은 2005년 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사무총장으로 발탁해 인연이 시작됐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도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에 소원해졌다. 2009년 5월 당시 청와대가 김 의원을 원내대표에 추대하려고 했으나 내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김 의원이 세종시 원안에 대한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나는 “가치 없는 얘기”라고 잘랐다. 나는 이른바 ‘친박 좌장’으로 불리는 인사가 세종시에 대해 나와 다른 의견을 얘기하면, 외부에서 내 생각도 달라진 것 아니냐는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