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때 최대 화두였던 경제민주화는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에 참여했던 김종인 전 의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개헌 때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분이다. 김 전 의원은 과거 17대 국회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 비례대표였는데 당시 나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 나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와 만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인연이 있다. 나는 당 비대위를 꾸릴 때 김 전 의원이 꼭 우리 당에 필요한 분이라고 판단, 도와달라고 요청해 승낙을 받았다. 실제로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을 새로 고칠 때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 있듯이 나와 김 전 의원의 관계는 아름답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분은 자기 주관이 너무나 확고해 자신과 다른 의견은 좀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 전 의원은 비대위가 가동되자마자 당 강령에서 ‘보수’란 표현을 빼자는 주장을 펴 당 내 인사들과 마찰을 빚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재오 의원 공천 방침에 항의한다며 갑자기 비대위원을 그만두겠다고 해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김종인 끌어안고 싶었지만…동의 힘든 주장 고수했다
나는 기존의 주변 인사들과 김 전 의원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됐든 내가 꼭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해 모셔왔던 만큼 어떻게든 끝까지 김 전 의원을 잘 끌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나로서도 동의하기 힘든 주장을 계속 고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재벌의 순환 출자 이슈였다.
순환 출자는 계열사 A가 B사, B사는 C사, C사는 다시 A사의 지분을 소유하며 서로 물려 있는 구조다. 순환 출자는 재벌 오너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금으로 많은 계열사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여러 폐해를 낳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나도 순환 출자 구조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순환 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을 두고 김 전 의원은 기존 순환 출자까지 모두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진짜 그렇게 된다면 재벌을 해체했다는 후련함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재벌을 해체해 버리면 숱한 대기업들이 곧바로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된다. 재벌 오너들이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돈을 써야 해 투자할 여력도 부족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 경제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 순환 출자는 인정하되 신규 순환 출자는 금지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