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 받는 '검은 반도체'…바다 아닌 육상서 초대형 물레 돌린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위협 받는 '검은 반도체'…바다 아닌 육상서 초대형 물레 돌린다 [창간기획-붉은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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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남 신안군 지도읍의 김 육상채묘 시설. 사진 형제수산

전남 신안군 지도읍의 김 육상채묘 시설. 사진 형제수산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⑪기후변화로 주목 받는 지속가능한 양식

전남 신안군 지도읍의 한 창고 안에서는 6m 길이의 대형 물레 15대가 수조 위에서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양식을 위해 김의 씨(종자)를 김망에 붙이는 채묘 작업이다.

굴 껍데기에서 10개월 정도 키운 김 포자를 수조에 넣은 뒤에 대형 물레에 채묘망을 씌워 돌리면 방출된 포자들이 그물에 붙습니다. 이후 냉동고에 보관하다가 적정한 시기에 바다에 넣으면 김으로 자랍니다.

그물에 노란색 김 포자가 붙은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했다. 사진 형제수산

그물에 노란색 김 포자가 붙은 모습을 현미경으로 촬영했다. 사진 형제수산

채묘 시설을 운영하는 주정호 형제수산영어조합법인 대표는 12년 전부터 김 육상 채묘를 시작했다. 올해부터 시설 규모를 기존의 3배로 늘렸는데, 이상 기후의 영향이 컸다. 그동안 대부분의 김 양식어가들이 바다 채묘에 의존했지만, 온난화로 인해 채묘 시기가 점차 늦어지면서 육상 채묘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에 따르면, 김 양식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전남 지역의 경우 보통 추석 이전에 채묘를 시작했지만, 올해는 적정 채묘 시기가 10월 5~10일까지 늦춰졌다. 주 대표는 “바다 온도가 오르는 상황이라 수온을 인위적으로 제어하고 태풍이나 자연재해도 예방할 수 있는 육상 채묘를 원하는 어가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위협받는 ‘검은 반도체’ 김 양식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양식 생산량은 식용 수산물 시장에서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미 어획량을 초과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육지에 이어 바다도 잡아서 먹는 시대에서 키워서 먹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김 양식은 한국이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해 ‘검은 반도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수온 상승과 해양 오염은 김 양식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 적응력을 높이고 바다를 살리는 대안 양식이 주목받는 이유다.

전남 장흥 무산김 양식장에서 김을 햇볕에 노출하기 위해 김발을 뒤집는 모습. 사진 장흥무산김

전남 장흥 무산김 양식장에서 김을 햇볕에 노출하기 위해 김발을 뒤집는 모습. 사진 장흥무산김

전남 장흥군에서 산 처리를 하지 않는 ‘무산(無酸)김’을 생산하는 장용칠 장흥무산김 대표는 “노동력이 많이 들고, 농약처럼 사용하는 염산을 쳤을 때보다 생산량이 30% 정도 주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염산을 뿌리면 고기가 도망가서 어업을 할 수가 없는데 우리는 김발 사이에 통발을 넣어 문어를 잡을 정도로 바다 환경이 살아난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장흥 무산김은 올해 초 지속가능한 양식업에 부여하는 친환경 국제 인증을 받기도 했다.

빽빽한 밀식 양식, 고수온 피해 키워

전복 양식장. 사진 청산바다

전복 양식장. 사진 청산바다

수과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2년 동안 이상기후로 인한 양식 피해액은 2382억 원에 달한다. 전체 피해액의 53%(1250억 원)가 고수온 때문이었다. 수과원은 “국내 수산업은 높은 해양 온난화 경향, 잦은 이상기후 발생, 높은 어획 강도, 독특한 양식 환경 등으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복을 양식하는 청산바다의 위진호 본부장은 “보통 전복을 출하하면 10~20% 정도가 죽었는데 올해에는 20~30%는 죽어서 올라오고 절반 이상이 죽은 어가도 있을 정도로 피해가 크다”면서 “전복을 키우는 가두리칸의 간격을 넓혀서 밀식을 줄였더니 해류 순환이 잘 돼서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과원은 기후변화에 적응력이 강한 슈퍼 전복종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용 수산양식관리협의회(ASC) 한국 대표는 “지속가능한 양식을 통해 바다가 허용하는 용량에서 인간이 최대한의 환경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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