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뒤집어진 ‘권력’…검사들, 권노갑 모교 달려갔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9.27

우리가 똘똘 뭉쳐서 잘해야 이번 정부가 성공할 수 있어. 다들 유념하도록.

1999년 초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 젊은 검사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결속과 분발을 강조한 이는 좌장이었던 검찰 중간간부 D. 지당한 분부였지만 배석자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모임이 끝나고 D의 차량이 떠난 순간 검사들이 입을 열었다.

기가 차네. 고교 동문회에만 나가고 향우회에는 코빼기 한 번 안 비치던 양반이.

나는 D가 동향인지 처음 알았어. 왜 이 모임에 저 선배가 왔나 싶더라니까.

1997년 대선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군사정변 이후 40년 가까이 반도 남단의 동쪽 지역에만 머물러 있던 권력이 최초로 서천(西遷)했다. 권력 교체가 지역 교체임을 온 국민이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의 당선은 40년 만의 권력 서천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중앙포토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의 당선은 40년 만의 권력 서천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중앙포토

그동안 눈칫밥 먹으며 몸을 한껏 낮춰야 했던 호남의 인재들이 제 세상을 만났다.

검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영남 독식’이 상수(常數)였던 그 조직은 하루아침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았다.

영남 검사들이 밀려난 자리를 호남 검사들이 꿰차기 시작했다. 세상 바뀐 걸 알게 되면서 고향을 얼버무리거나 감췄던 이들의 ‘커밍아웃’도 줄을 이었다.

호남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한 D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요직에 오르는 것으로 보답을 톡톡히 받았다.

하지만 좋은 자리는 한정돼 있었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렸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도 더 좋은 보직을 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했다.

능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줄이 필요했다. 당대의 야심가들이 주목한 건 가장 튼튼했던 동아줄, 권노갑이었다.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2000년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정권의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2000년의 모습이다.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