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일타강사④ 현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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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강의에서 개별자유여행(FIT·Free Individual Tour)의 양대 과제 ‘항공권 구입’과 ‘숙소 예약’에 대해 공부했다. 비행기표도 사고 호텔도 구했으니 이제 ‘놀거리’ 과제로 넘어갈 차례다. 여행 가서 뭐하고 놀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겠으나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 널브러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패키지여행은 가이드만 따라다니면 만사가 해결되지만, FIT는 모든 걸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이 FIT의 요구가 ‘현지 투어’라는 신종 여행법을 낳았다. 현지 투어는 개별자유여행의 마침표이자 당대 여행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현지 투어란 무엇인가
해외여행은 두 종류다. 패키지여행 아니면 개별자유여행(FIT). 패키지여행은 공항에서 비행기 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여행사가 모든 여정을 책임진다. 그래서 편하다. 대신 자유는 없다. 개별자유여행은 정반대다. 자유가 넘친다. 그 과도한 자유가 자주 부지런함을 요구하고 수시로 피곤을 유발한다.
해외여행하면 패키지여행이었던 시절은 오래전에 갔다. 시방 대세는 누가 뭐래도 개별자유여행이다. 소비자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2023년 3월 해외여행객 중 62%가 FIT를 선택했다. 패키지여행은 26.9%, 여행사가 항공과 숙소만 묶어서 파는 ‘에어텔’은 11.1%였다. 해외여행객의 62%가 항공권과 숙소를 각자 예약했다는 뜻이고, 에어텔을 포함한 73% 이상이 여행사가 짠 현지 스케줄을 외면했다는 뜻이다.
FIT 시장이 커지면서 FIT도 진화를 거듭했다. 배낭여행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에는 최대한 많은 나라의 여권 도장을 모으는 게 유행이었다. 그 시절 한국의 청년 배낭여행객은 전 세계를 미아처럼 떠돌았다. 유럽의 어느 공원 벤치에서 새우잠을 자고,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바게트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웠다. 악착같이 돌아다니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이다.
지금은 다르다. 현재 개별자유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기준은 ‘취향’이다. 가령 프랑스 파리를 가도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같은 기념엽서 명소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 복잡한 파리 지하철을 타고 ‘방브 벼룩시장’을 가거나 ‘라탱 지구’ 같은 대학가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인다. 요즘엔 좀 더 과감해졌다. 일정에서 하루를 빼 ‘몽생미셸 수도원’이나 모네가 살던 ‘지베르니 정원’을 다녀오거나, 파리 시내 요리 학원에 나가 크루아상 굽는 법을 배운다.
이 모든 걸, 그러니까 현지에서 놀거리를 수배하고 예약하고 찾아가는 이 모든 번거로운 절차를 FIT는 여행자 스스로 다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지친다. 이럴 때 이용하는 게 현지 투어 혹은 가이드 투어다. 서구에서는 ‘투어 & 액티비티(Tour & Activities)’라고 한다. 일타강사는 편의상 ‘현지 투어’라 하겠다. 한국에 있는 여행사가 아니라, 여행지 현장의 업체나 가이드가 진행하는 투어여서다.
현지 투어 시장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부쩍 성장했다.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2023년 3월 해외여행객 2000명의 평균 여행 기간은 2019년 3월보다 28% 늘어난 6.77박이었고, 평균 여행 경비는 23% 늘어난 178만원이었다. 쉽게 말해 옛날처럼 자주 못 나가니 한 번 나갈 때 길게 나가고 돈도 많이 쓴다는 얘기다. 해외여행의 70% 이상을 FIT가 차지하는 지금, 여행 기간이 길어지고 경비가 늘어나면 현지 투어 시장도 커지는 게 당연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소규모 또는 개별 여행이 늘어난 것도 현지 투어 성장세와 관계있다. 무엇보다 현지 투어는 MZ세대 여행 문화와 어울린다. 여행 트렌드 연구소 ‘히치하이커’의 김다영 대표는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에서 MZ세대와 현지 투어의 상관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여행 산업의 최대 소비자로 부상한 MZ세대는 장소 위주의 관광을 ‘경험’ 중심의 여행으로 이동시켰다. ‘액티비티’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됐다. 이들에게는 여행지에서 어떤 시간을 즐길 수 있는지, 누구와 만나 어떤 교류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각양각색 현지 투어
현지 투어는 지역마다 다르다. 당연하다. 현지가 다르니 현지에서의 투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저마다 다른 게 현지 투어의 매력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현지 투어를 소개한다. “거기까지 갔는데 그걸 안 하고 왔어?”라고 물을 때의 바로 ‘그것’이다.
유럽부터 보자. 2000년대 초반 유럽 주요 도시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가이드들이 모여 한국인 FIT를 위한 투어 상품을 만들었다. 여행 업계에서는 이 투어 상품이 한국판 현지 투어의 시초라고 본다. ‘유로자전거나라’ 같은 여행사가 로마 바티칸 투어, 파리 루브르 박물관 투어,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같은 현지 투어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대도시를 기반으로 한 반나절 혹은 한나절 도보여행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대 들어 유럽 현지 투어는 한 단계 진화했다. 투어 주제가 다양해졌고 이동 거리가 늘어났다. 영국과 스페인에서 프로축구 경기 ‘직관’ 상품이 잘 나갔다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외곽을 다녀오는 당일 투어가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남부 노르망디 해변의 중세 수도원 몽생미셸 투어, 이탈리아는 남부 해안 드라이브 투어 같은 상품이 잘 나갔다. 프랑스관광청 정혜원 부소장은 “파리를 처음 가는 한국인이 박물관 해설 투어를 선택한다면 프랑스를 여러 번 경험해본 한국인은 파리 근교 도시를 선호한다”며 “2019년 몽생미셸은 말 그대로 ‘한국인 천지’였다”고 말했다.
한국인 FIT 비중이 높은 일본은 코로나 사태 이후 버스 투어가 대세로 떠올랐다.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출발하는 ‘비에이·후라노 버스 투어’, 규슈 후쿠오카에서 출발하는 ‘유후인·벳푸 버스 투어’가 대표 현지 투어 상품이다. 일본 현지 투어 전문업체 ‘테라투어’ 심원보 대표는 “코로나 사태 이후 유후인 관광열차 운행이 줄어 대체 상품으로 버스 투어를 만들었더니 예약이 빗발쳤다”고 말했다. 해변 휴양지를 낀 동남아에서는 서핑이나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같은 물놀이 투어 상품이 다른 지역보다 많고, 두바이의 사막 투어는 환승객을 위한 현지 투어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