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 EAI원장 "한·중 불신은 '새로운 30년' 설계에 치명적 부담"[한·중 수교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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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2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국민이 가진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할 양국에 치명적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손 원장은 이날 종로구 사직동 EAI 사옥에서 1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양국간의 불신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변에 깔린 불신과 비호감 정서는 부정적 여론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양국 정부가 외교정책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와 EAI가 공동 기획한 심층 면접조사에서 한국인의 70.3%는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고, 국가별 신뢰조사에서도 90.2%가 중국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 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굉장히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낮은 호감도는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책 결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깊숙이 자리 잡은 반중정서는 고도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대중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선택지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대표적 사례를 든다면.
"2019년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ㆍ일 관계는 애초 역사문제로 시작해 반도체, 소부장 등 통상분쟁에 이어 안보갈등으로까지 확대했다. 정치인들은 특정 국가에 대한 비호감 여론을 정치에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중 정서를 정치적 지지 확보를 위해 동원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될 경우, 미국 못지않게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 중요 상대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상당히 위험한 요인이 될 것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갈등의 핵심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중국의 경제 보복조치 등 사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수조원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사드로 인한 반중감정이 중국을 기회가 아닌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게 했다는 점이다. 북한을 군사적 위협으로 보는 의견이 80%가량인데, 중국에 대해서도 63%에 달한다. 안보 사안인 사드가 반감의 핵심 원인이기 때문에 중국을 단순한 위협이 아닌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경제·안보 등 전 영역에 걸친 반중 기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의 반중 정서가 더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드 사태, 동북공정뿐 아니라 베이징 겨울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나타난 석연치 않은 판정도 한몫했다. 젊은 세대의 최대 화두인 공정의 영역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인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2019년 일본의 경제보복 당시 젊은 세대의 반일 정서를 기성세대와는 달랐는데, 분석 결과 역시 역사 문제를 엉뚱한 반도체 무역 보복으로 이어갔던 일본의 조치를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공정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을 인코스로 추월하고 있다.   황대헌의 이 상황을 심판은 반칙으로 인정해 실격 처리했다. 연합뉴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을 인코스로 추월하고 있다. 황대헌의 이 상황을 심판은 반칙으로 인정해 실격 처리했다. 연합뉴스

손 원장은 중국의 부상을 '당면한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하는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어,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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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중 대결의 승자를 예상하는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의 GDP가 2030년 무렵 미국과 대등해지고, 이후 미국을 추월한다는 전망이 많다. 시기가 더 빨라질 거란 관측도 적잖다. 경우에 따라 추월 시점이 대략 윤석열 정부 말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대중외교 전략은 중국을 움직여 한반도 문제를 풀어보자는 데 맞춰져 왔는데, 이제는 '대국'이란 관점에서 한ㆍ미 동맹을 논하는 것처럼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ㆍ중 관계를 미ㆍ중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미래의 한ㆍ중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미ㆍ중 프레임을 상대화하는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단순화하면 미·중 사이의 '선택의 프레임'에 기댄 외교정책을 펴는 상황과 유사하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나 칩4 등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한국의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미ㆍ중 간 역학관계가 오히려 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22.08.23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 2022.08.23

손 원장은 미·중 간 선택의 기로에 내몰렸다는 평가는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중국이 설계한 치밀한 전략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은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내세워 한반도에서는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한다"며 "중국은 앞으로도 이런 프레임을 계속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선택에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중국이 간과한 측면이 있다. 한국에 미·중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할 경우, 한국을 주저하게 만들 순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한국을 미국 쪽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중국에게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고, 중국은 이러한 한국의 완전한 이탈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이를 활용해 국익을 최우선에 내세운 당당한 실리외교를 추구할 공간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중간의 패권경쟁의 시기다. 어떠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미래 30년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한국의 경제·군사·문화력에 상응하는 싱크탱크가 나와야 한다. EAI가 지난 10년간 해온 의식조사 데이터 연구를 미래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주요 정책의 방향에 대한 특정 시기의 인식이나 여론이 아니라, 오랜 기간 변화해온 인식의 추이를 정확히 분석해 새로운 정책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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