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칩4엔 "中 배제 아니다"…사드엔 "협의 대상 아니다" [한·중 수교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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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이후 지난 70여년간 중국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경제적으론 연 평균 8%대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했고, 국제사회에선 그간 규범과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의 패권국 지위를 위협하는 데 이르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신화=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신화=연합뉴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교역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한국의 고민은 미·중 경쟁 강화에 비례해 점증하게 됐다.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미·중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부 출범 후 한국 정부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협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를 탈피해 ‘전략적 명확성’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을 다시 전면에 내걸었다. 단 이에 따른 부담도 분명하다. 특히 미·중 경쟁이 배터리·반도체 등 공급망 문제를 중심에 둔 기술 경쟁으로 진화하며 한국의 선택의 무게감이 더욱 커졌다.

중앙일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은 한·중 간 핵심 갈등 사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점검해봤다.

①칩4와 IPEF, 공격적 설득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놓인 공급망 문제에서 윤석열 정부는 무게중심을 미국 측에 옮기는 전략적 명확성을 분명히 한 상태다. 정부 출범 11일만인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포괄적 전략 동맹 격상’의 핵심 기둥 역시 공급망 협력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및 칩4 참여 등으로 미중 공급망 경쟁 속 무게중심을 상당 부분 미국 측으로 옮겼단 평가를 받는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및 칩4 참여 등으로 미중 공급망 경쟁 속 무게중심을 상당 부분 미국 측으로 옮겼단 평가를 받는다. 사진 대통령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원년 멤버로 참여했고,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예비회의 참여를 공식화했다.

IPEF와 칩4를 활용해 공급망 분야의 반중(反中) 전선을 확대하려는 미국과 이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공격적 설득 전략’을 택했다. 중국을 향해 IPEF·칩4가 ‘중국 배제용’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국 측에도 이같은 연합체의 개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식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에 설명하고 풀어나가는 적극적 외교에 임하라”고 주문한 것 역시 미·중 경쟁 속 명확성을 추구하되 그로 인한 리스크를 외교적으로 해소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 공정 웨이퍼에 서명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 공정 웨이퍼에 서명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스1

②사드는 안보주권

2016년 7월 8일 한·미 양국이 결정한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는 지난 6년간 한·중 간 갈등 구도를 고착화한 핵심 갈등 사안이다. 특히 중국은 지난 9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직후 기존의 ‘사드 3불(不)’에 더해 1한(限)을 추가로 꺼내들며 사드를 둘러싼 갈등 전선의 확장을 예고했다.

중국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 이튿날인 지난 10일 한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 "3불 1한을 선시(표명)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한의 경우 사드 기지 운용을 제한한다는 의미인데,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이를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사진 외교부 제공

중국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 이튿날인 지난 10일 한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 "3불 1한을 선시(표명)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한의 경우 사드 기지 운용을 제한한다는 의미인데,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이를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사진 외교부 제공

1한은 기배치된 경북 성주 사드 기지의 운용을 제한한다는 의미로, 중국 측은 이를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대외에 선시(宣示·표명)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재 사드 기지의 실질적 운용은 주한미군이 맡고 있단 점에서 1한은 사실상 미국을 향한 압박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미 국무부가 사드 배치를 “동맹의 결정”으로 규정하며 “(중국이) 한국에 대해 자위적 방어 수단을 포기하라고 비판하거나 압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은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사드 배치를 ‘안보 주권’으로 규정하며 협의 대상이 아니란 입장이다. 이에 따라 “새 관리는 과거의 부채를 외면할 수 없다”며 전임 문재인 정부의 짐을 이어 받으라는 중국 측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고 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5년간 ‘임시 배치’ 상태였던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기 위한 실무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실과 군 당국에 따르면 성주 사드 기지 부지를 미군 측에 공여하고, 기지 운용에 필요한 전력·상하수도 시설 등을 정비하는 절차가 9월 중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현재 컨테이너 등 가건물로 세워진 기지를 제대로 된 건축물로 보강·증축하고 일반환경영향평가 진행하려면 추가적으로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사드는 5년 넘게 '임시 배치' 상태다. 환경영향 평가 등 기지 운용에 필요한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서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곧장 사드 기지 정상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경찰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로 향하는 육로에서 진행된 집회를 강제해산하자, 물자를 실은 차량이 사드 기지로 향하는 모습. 사진 사드철회소성리종합상황실

사드는 5년 넘게 '임시 배치' 상태다. 환경영향 평가 등 기지 운용에 필요한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서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곧장 사드 기지 정상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경찰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기지로 향하는 육로에서 진행된 집회를 강제해산하자, 물자를 실은 차량이 사드 기지로 향하는 모습. 사진 사드철회소성리종합상황실

다만 문재인 정부 5년간 임시 배치 상태로 ‘반쪽 운용’에 그쳤던 사드 기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곧장 정상화 수순을 밟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중국의 3불 1한 요구에 선을 긋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동맹국인 미국에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 안보 협력임을 재확인하는 상징적 행보가 될 전망이다.

③대만 놓곤 원론적 입장, 개입 신중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 관계는 최근 미·중 기싸움의 최전선에 놓인 현안이다. 갈등의 기폭제는 지난 2~3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었다. 중국은 즉각 대만 해협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단행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펠로시 의장과 그의 직계 친족에 대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지난 3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과 면담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일정으로, 실제 중국 측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대만 해협 인근의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등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였다.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지난 3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과 면담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일정으로, 실제 중국 측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대만 해협 인근의 실사격 훈련을 진행하는 등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였다. 연합뉴스

미·중 경쟁 속 전략적 명확성 기조를 드러낸 윤석열 정부였지만, 중국의 핵심 이익인 양안 관계 만큼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입장 표명이 필요할 경우엔 중립을 고수하는 신중론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함과 동시에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식이다.

윤 대통령이 대만에 이어 지난 4일 한국을 방문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을 면담하지 않고 전화 통화만으로 소통을 마무리한 게 대표적 사례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대만·싱가포르·일본 등 한국을 제외한 모든 방문국 정상과 만났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펠로시 의장 방한 일정이 대통령 휴가(1~5일)와 겹쳤기 때문에 면담 일정은 잡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대중 도발 수위를 높이고, 이에 중국은 대만 해협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단행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감안해 윤 대통령이 면담이 아닌 통화에 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④북핵, 중국 적극 나서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의 발사 과정을 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의 발사 과정을 시찰하는 모습. 연합뉴스

올해 들어 본격화한 북한의 무력 도발 국면에선 ‘한·미·일 vs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특히 지난 3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도발한 데 대해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 결의 국면에선 이같은 신냉전 구도가 명확히 드러났다. 한·미가 추가 제재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촉구한 것과 달리 중·러 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활용, 거부권을 행사하며 추가 제재를 막아섰다.

지난해 11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회담 당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화상 회담 당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오히려 중국이 북한의 ICBM 발사 책임을 미국에 떠넘겼다. 장쥔(張軍) 주유엔 중국대사는 지난 6월 유엔총회에서 “현 한반도 정세는 미국이 정책을 뒤집고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전제 조건 없는 대화만 얘기할 게 아니라 실제 행동을 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대북 제재 완화 및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북한 요구사항을 중국이 대신 공개 설파한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를 둘러싼 이같은 대치 국면은 한반도가 미·중 패권경쟁의 주요 무대로 자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입장에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견인하고 비핵화 프로세스를 유도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이 이끌어내는 동시에 미국과는 원칙론에 입각한 대북 공조를 강화해야 하는 외교적 난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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