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CEO 럼즈펠드 국방장관 좌절,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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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가에 '럼즈펠드 실패학'이 화제다. 도널드 럼즈펠드(74.사진) 전 국방장관의 화려한 경력과 최근의 이라크전 실패에 따른 쓸쓸한 낙마가 극적으로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덫' 못지않게 그를 실패로 이끈 것은 지나친 '자기 과신의 덫'이었다는 게 미 언론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비상과 추락=지난 40년간 럼즈펠드의 인생은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그는 30세에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기록했다. 딕 체니 현 부통령도 당시 그가 발탁한 보좌관이었다. 이어 42세에 백악관 비서실장, 43세에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냈다.

유능한 최고경영자(CEO)로서도 갈채를 받았다. 1977년 제약사인 'G D 설'의 경영을 맡은 이후 그가 손댄 기업마다 성장세를 누렸다. 그리고 마침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국방장관으로 복귀해 국방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런 그의 거침없는 언행은 언제나 화제였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런 럼즈펠드를 가리켜 "내가 아는 한 가장 냉혹한 사람"이라면서도 "야망과 능력이 이음매 없이 연결된 노련한 정치인이자 관료"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이라크 전쟁이라는 수렁에서는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달 7일 중간선거에서 12년간의 '공화당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돼 장관직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했다.

◆ 왜 '이라크'에선 실패했나=럼즈펠드 장관이 '테러와의 전쟁'과 함께 역점을 둔 것이 '공룡' 미군의 개혁이었다.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군대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산 배분에 '투자 효율'을 접목했고, 변화하는 시장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기업처럼 군의 경량화.유연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초기에 성공하는 듯했던 개혁은 곳곳에서 반발에 부닥쳤고 결과적으로 그의 사임에도 큰 영향을 줬다.

미 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는 10일 '성공한 CEO 럼즈펠드'가 왜 막판에 '실패한 국방장관'이 됐는지를 경영적 시각에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칼럼니스트 릭 뉴먼은 "전시가 아닌 평시였다면 럼즈펠드는 천재로 부각됐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불안한 '시장 환경'을 우선 그 원인으로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나친 자신감이 패인이었다는 지적이다. 럼즈펠드는 200년 전통의 군을 단숨에 변화시키려 하는 등 개혁 대상을 과소평가했다. 또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조언을 하는 참모는 무시하고 비난했다. 그러자 군부는 변화하는 대신 시간을 끄는 '진지전'을 구사했고, 이라크의 전황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CEO 럼즈펠드'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점점 중요해지는 '집단적 지혜'를 경시한 것이다. 뉴먼은 여기서 "(말하기 전에) 들어라"는 중요한 경영 교훈이 도출된다고 설명했다.

자기 과신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변했고, 결국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럼즈펠드의 친구이자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전략가인 케네스 애덜만은 11일 주간 뉴요커지와 인터뷰에서 럼즈펠드가 '깊은 부정(deep denial)'에 빠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럼즈펠드가 이라크 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를 듣자 15~20분 동안 스스로 묻고 답하며 "우리는 미국 내 전쟁에서 질 수 있으나 이라크에서는 패배할 수 없다"는 독백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애덜만은 또 "럼즈펠드의 이러한 자문자답식 독백을 중지시키기 위해 '그래, 우리는 지금 이라크전에서 지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벌컥 화를 내면서 내 말을 끊었다"면서 "럼즈펠드는 그러고는 다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애덜만은 이어 이라크 상황과 관련해 미군 측의 책임 부재와 의사 결정의 질 등 두 가지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럼즈펠드는 "모든 책임은 항상 내가 진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럼즈펠드는 (우리의) 미래였지만 오늘날의 럼즈펠드는 과거의 그가 아니다"며 "우리가 과거에 그를 잘못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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