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출신의 진보적 성직자|조지, 케어리 l03대 신임 성공회 대주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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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7천만 성공회 신도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에 노동자 계급 출신의 조지 케어리 주교 (54)가 지난달 말 임명됐다.
영국 총리의 추천으로 여왕이 임명하는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의 교황」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종교적으로 중요한 자리다.
영국 성공회의 제1백3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된 캐어리 주교는 91년1월말 은퇴하는 로버트 룬시 현 캔터베리 대주교의 후임으로 앞으로 영국 성공회는 물론 전세계 성공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케어리 주교는 영국 남서부 바스 앤드 웰즈 주교로 탁월한 종교 이론가이자 진보적 성직자로 추앙 받고 있으며 청렴한 인격자라는 존경과 함께 일찍부터 다음 캔터베리 대주교 물망에 올랐었다.
케어리 주교는 영국 성공회와 로마 카톨릭 등 전세계 기독교 통합 운동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적극적 지지자로 로마 카톨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성공회 성직자로 꼽혀왔다.
평소 「천재」 「온화하고 학구적이며 초 교파적 안목을 지닌 사람」으로 성공회 내외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케어리 주교는 성서를 급진적으로 해석하려는 일부 교계 내부의 움직임에 경계를 표명하고 전통적 믿음을 강조하는 원칙주의자라는 평가와는 달리 여성의 사제 서품 등 「파격」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케어리 주교는 1935년 런던 이스트 엔드에서 가난한 법원 잡역부의 아들로 태어나 빈민 보호소에서 생활하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소년 시절 사환 일을 하다가 영국 공군에 입대, 2년간 무전병으로 복무했으며 제대 후 독학으로 런던대 킹스칼리지에 입학, 신학을 공부했다.
지난 87년 바스 앤드 웰즈 교구 주교가 된 케어리 주교는 환경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녹색 주교」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 소식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소감을 말한 케어리 주교는 그러나 『여왕이 캔터베리 대주교를 임명하는 현재의 영국 성공회 제도는 지나치게 비종교적이고 무가치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 내에서는 케어리 주교의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은 교회내 신학적 비정상적 기류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대처 총리의 강력한 주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케어리 주교와 캔터베리 대주교 후임 경쟁을 벌였던 존해브굿 요크 대주교는 그를 『젊고 유능한 학자며 포교에 힘을 쏟는 귀감이 될 성직자』라며 축하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네 자녀, 손자 2명 등이 있다. 그는 여가 시간에는 음악 감상과 시 암송을 즐기고 가끔씩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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